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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탄생 250주년]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1. 들어가며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된 해이다. 이를 맞아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삶과 음악 세계를 살펴보고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음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음악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다. 고대 아프리카인, 북미와 남미의 원주민, 오세아니아 종족들과 같은 원시 집단에서도 음악이 있었고, 중국, 인도, 한국, 일본의 고대사회에서도 역시 음악이 있었다. 우리가 접하는 음악의 발달 시기는 대개 르네상스(1430∼1600), 바로크(1600∼1750), 고전주의(Classic, 1750∼1820), 낭만주의(1820∼ 1900)를 거쳐 20세기 현대음악에 이른다.
시대적으로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초기에 걸쳐 활동하였다. 즉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베토벤 전의 모든 음악을 베토벤이 집대성하고 베토벤 이후의 모든 음악의 뿌리를 이룬다는 의미에서는 베토벤 자신을 독립시켜 한 시대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그래서 필자는 ‘베토벤주의(Beethovenism)’라고 이름한다.
2. 베토벤의 조상과 가족관계
베토벤의 조상은 벨기에의 메헬런 지역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베토벤의 증조부인 미카엘 판 베토벤(1684년생)은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하자 자신의 큰아들이 있던 본으로 도망했다. 1707년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코넬리우스와 루트비히였다. 큰아들인 코넬리우스는 양초 제조업과 궁정으로 들어가는 식료품 조달업을 하였는데, 1731년에 본으로 이사했다. 둘째 아들 루트비히는 음악 공부를 하였다. 바로 이 루트비히가 베토벤의 조부이며, 베토벤은 조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베토벤의 조부는 어려서부터 음악 공부를 하여 가수, 오르간 연주자, 합창 지휘자 등을 하다가 나중에는 궁정 악장까지 되는데, 베토벤이 세 살 때 사망하였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1740∼1792)은 어려서부터 음성이 좋았다고 한다. 열 살에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개최되는 연극에서 가수로 뽑혀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이후에 루트비히가 직접 요한의 음악 공부를 담당하여 주로 성악과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바이올린도 교육한 기록이 있다. 나중에 궁정음악가가 되어 테너 가수로 일했고, 비교적 훌륭한 음악 교사였다는 기록이 있다. 말년에는 알코올중독에 걸려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베토벤이 스물두 살일 때 사망하였다.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1747∼1787)는 원래 시종무관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사망한 후에 베토벤의 아버지인 요한과 1767년에 재혼했다. 요한과 결혼한 후에 일곱 자녀를 두었는데, 넷은 어려서 사망하고 세 아들만 생존하였다. 베토벤의 어머니는 베토벤이 열일곱 살일 때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이상으로 보면 베토벤의 조상 중에는 음악의 역사에 남을 만한 조상은 없지만 조부와 아버지가 음악적인 재능은 어느 정도 타고난 듯하며, 이러한 음악적인 재능이 유전(遺傳)하여 베토벤이 ‘악성(樂聖)’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부분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베토벤의 어린 시절
베토벤은 1775년경 다섯 살에 음악적인 재능이 처음 드러났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는 언급된 바가 없다. 어려서부터 즉흥곡에 상당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듯 하다. 정규교육은 1777∼1780년에 티로시니움(Tirocinium)이라는 라틴 계통의 초등학교 과정을 밟은 것이 전부이다. 자신의 교육이 부족함을 느껴 19세에 본대학의 철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강의를 듣는다.
최초의 음악 스승은 아버지 요한이었다. 그 후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인 판 덴 에덴이 베토벤에게 음악 이론과 피아노를 가르친다. 1779년부터 1781년 사이에는 프파이퍼, 로바티니, 코흐, 리스, 젠저, 네페 등을 사사하는데, 특히 네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17세에 빈으로 가서 모차르트를 만나서 즉흥연주를 하는데, 이 연주를 들은 모차르트가 “이 젊은이를 눈여겨보라. 이 젊은이는 언젠가는 세상에 대하여 큰소리를 지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평하였다고 전한다. 1791년 베토벤이 21세 때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하이든이 본을 방문하여 베토벤을 만난다. 하이든이 베토벤에 대한 교육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제의하여 이듬해 큰 꿈을 안고 빈으로 유학길에 오른 베토벤은 이후 전 생애를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4. 빈 시절(1792∼1827)
빈 시절의 발달단계는 세 시기로 나뉜다.
1) 제1기 모방의 시기(1792∼1802)
하이든, 모차르트 등 선배 음악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에서 ‘모방의 시기’라 불린다. 빈으로 유학 온 후 베토벤과 하이든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하이든이 워낙 바빠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자 이에 베토벤은 상당히 불만을 느끼고 하이든에게 실망한 나머지 다른 음악 선생을 찾아 나선다. 이리하여 당시에 대위법에 아주 능통한 음악가로 알려진 솅크에게 대위법을 가르쳐줄 것을 요청하여 배운다. 그 후 베토벤은 알브레히츠베르거를 만나서 대위법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또 살리에르를 만나서 이탈리아 풍의 성악 작곡법을 배운다. 1798년 나폴레옹의 부하인 베르나도테 장군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영웅교향곡’을 한 번 쓰지 않겠느냐고 제의하고 베토벤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영웅교향곡’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다.
제1기의 중요한 작품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세 곡의 삼중주곡(Op 1)」, 「피아노 소나타」 제1∼18번,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가곡 아델라이데」,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두 곡, 「피아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혼을 위한 5중주곡」, 초기 「현악 4중주곡」 여섯 곡, 「교향곡」 1번과 2번, 「바이올린 소나타」 제1∼8번, 「바이올린과 관혁악을 위한 로만스, G 장조와 F장조」 등이 있다.
이 시기는 문화적으로 꽃을 피운 시기였다. 칸트가 그의 불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1790) 등을 발표했고, 괴테가 『에그몬트』(1788)와 『파우스트』를 발표했다. 이 외에도 실러, 키츠, 워즈워스, 바이런, 하이네, 푸시킨, 위고 등 불멸의 시와 소설을 남긴 문학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친 시기였다. 베토벤은 이러한 철학가,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깊이 감동한다. 실제로 베토벤은 괴테나 실러의 작품을 음악의 주제로 사용한다.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에서 영감을 받아 「에그몬트 서곡」을 작곡하고,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는 제9번 교향곡 「합창교향곡」의 4악장의 가사를 이룬다. 이러한 작품들 외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셰익스피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리피데스, 호메로스 등 고전을 아주 열심히 읽고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하면 음악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한다. 특히 프로메테우스에게 매료되어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라는 발레 음악을 작곡한다.
2) 제2기 외향화 시기(1802∼1815)
베토벤이 선배 음악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펼친 시기로서, 자신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외향화 시기’라고 부른다. 1802년 4월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요양하던 중 자신의 청각 장애로 인하여 베토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이때 쓴다. 이 사건이 베토벤의 정신적·인격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즉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대하여 좌절하고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가혹한 운명”을 통하여 더 높은 인격적인 성숙을 성취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취할 것을 스스로 다짐한 계기가 된다. 베토벤이 인생에 대해 과거의 자신을 청산하고 새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서를 쓰고 나서 며칠 뒤 베토벤은 다시 빈으로 돌아와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는데,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베토벤 작품 활동의 제2기”라고 명명하였다.
이 시기의 중요한 작품들로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 「교향곡」 제3∼8번, 중기의 「피아노 소나타」 제19∼28번, 중기의 「현악 4중주곡」 제7∼9번, 「피아노 협주곡」 제3∼5번,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피델리오」, 「피아노와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합창 환상곡」 등이 있다. 소위 ‘걸작의 숲’이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모차르트, 하이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곡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1805년 『비너차이퉁(Wiener Zeitung)』이라는 잡지는 1월 30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한다. “1792년 무명의 학생으로 빈으로 유학 온 베토벤은 이제 하이든, 모차르트와 어깨를 겨루는 대음악가가 되었다”라고.
3) 제3기 내향화 시기(1815∼1827)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적 상태에 따라 작곡을 한다는 의미에서 ‘내향화 시기’라고 부른다. 심리적 갈등 상태도 거의 해결된 상태에서 작곡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주된 감정의 상태가 되는 시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의 시기’나 ‘완성의 시기’라고도 불린다. 바흐와 헨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는 시기이다. “헨델은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이며 바흐는 “하모니에 있어서 불멸의 신”이라는 노트를 남긴다.
이 시기의 중요 작품으로는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두 곡, 후기 「피아노 소나타」 제28∼32번, 성악곡 「멀리 있는 애인에게」, 「6개의 주제와 변주」, 「10개의 주제와 변주」, 「장엄미사」, 「디아벨리의 왈츠를 주제로 하는 33개의 변주곡」, 「교향곡 제9번」, 후기 「현악 4중주곡」 제12∼16번 등이 있다.
이러한 곡들은 모두 극도의 성찰을 통하여 “완벽한 심적인 평화”를 성취한 작품들이다. 조용히 흐르나 그 속에서 엄청난 “내적인 힘”을 지닌 곡들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하나로 통괄된 곡들, 인격적으로 성인의 경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음성이라 할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은 4악장, 5악장, 6악장, 7악장 등 자신의 감정을 아주 자유롭게 구사한다. 베토벤 자신이 일생 동안 추구한 “완벽한 평화와 자유”를 이 실내악곡들에서 유감없이 구사한다.
1827년 3월 26일 이 위대한 음악가가 세상을 떠났다. 사흘 후 거행된 장례식에서는 베토벤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12번」이 장송행진곡으로 연주되었다. 안슈츠라는 시인이 조사를 낭독했고, 아이블러, 크로이처 등 당시 빈의 젊은 음악도 여덟 명이 운구를 했으며, 체르니, 슈베르트 등이 횃불 행진에 참여하였다. 당시 신문은 시민 약 1만 5천~2만 명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고 전한다.
5. 악성으로서 베토벤, 그 교훈
베토벤은 ‘악성(樂聖)’, 즉 ‘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린다. 이상 기술된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적인 발달 과정을 통하여 베토벤이 어떻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유전적인 요인을 들 수가 있다. 비록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베토벤의 조부와 아버지가 음악가였다. 아마도 이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조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요한이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겠다라는 야심으로 어릴 때부터 베토벤에게 교육을 한 것이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성악가였으며 피아노와 바이올린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어서 베토벤에게 비교적 체계적으로 조기 음악 교육을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선생에게서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덴, 프파이퍼, 로바티니, 리스, 네페, 솅크, 알브레히츠베르거, 살리에리, 드라고네티, 하이든 등 베토벤의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당시의 훌륭한 음악 선생들에게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네페의 영향은 베토벤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베토벤에게 영향을 끼친 작곡가로는 모차르트, 하이든,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헨델, 글루크 등이 있다. 네 번째는 후원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루돌프, 킨스키, 롭코비츠, 라주모프스키, 리히노브스키 등 많은 귀족과 음악 애호인이 한마음이 되어 정신적·물질적으로 도와주어 베토벤은 초기 단계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당시의 시대정신의 영향을 들 수가 있다. 프랑스혁명, 칸트와 헤겔의 철학 사상, 괴테·실러·워즈워스·바이런·위고·키츠·푸시킨 등의 활동이 베토벤의 음악적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시대정신이 베토벤의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베토벤 내부에(비단 베토벤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부라고 할 수 있다) 잠자던 창의성의 표현 범위가 엄청나게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 베토벤이 지상의 음악을 초월하여 천상의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신에 대한 베토벤의 진지한 자세”가 크게 공헌하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인간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신성함의 추구”가 베토벤 음악의 불멸성에 기여한 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곱 번째는 베토벤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다. 정규교육의 과정이 초등학교 과정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대학의 철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보충하려는 노력도 이미 청소년기에 시도하였다. 빈 유학 시절의 초기에 솅크, 알브레히츠베르거, 살리에리, 푀르스터 등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구했다. 또한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하여도 철저히 비판하고 부족함이 있으면 끊임없이 고쳤고, 이렇게 하여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곡 자체를 새로 작곡했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 작곡했기 때문에 베토벤의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복잡해지는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베토벤의 음악을 ‘음악적 사고(Musical Thinking)’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는 베토벤이 앓고 있었던 정신적·신체적 질병들을 들 수가 있다. 이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고, 이러한 과정이 작곡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정신적 위기에서 자살하려고 할 만큼 심각한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인 고통이 오히려 베토벤이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수양을 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자초한다. 고통이 없이는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베토벤에게는 그러한 고통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다.
베토벤 일생의 좌우명이 “Durch Leiden zu Freude(고난을 헤치고 환희로)”였다. 그러나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술이 더 적절하다. “Von Leiden durch Freude zu unsterbliche Wahrheit und Vollendung(고난에서 출발하여 환희를 거쳐 불멸의 진리와 완성으로).” “베토벤은 인간의 세속적인 소리를 듣지 말고 오로지 신의 음성만 듣고 이를 인간에게 전달해야 할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라는 로맹 롤랑의 해석은 무척이나 적절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베토벤의 음악적인 발달 과정을 크게 3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모방의 시기, 즉 하이든 등의 다른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는 시기이다. 제2기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음악 세계를 펼치는 시기인데, 베토벤이 내면의 문제를 외양화(externalization)하여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시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제3기는 초월의 시기, 즉 완벽한 평화를 성취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모두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통괄하는 과정, 즉 내면화(internalization)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베토벤의 음악과 생애에만 국한되는 과정은 아니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편타당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베토벤의 삶과 음악적 사상은 과거라 아니라 현재이며,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보편타당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연도 | 베토벤 | 정치 | 사회 | 동시대의 음악가들 | 한국의 상황 |
1769 | 베토벤의 형 루트비히 마리아의 출생과 사망. | 영조 45년 유형원, 『반계수록』 편찬. | |||
1770 | 본에서 탄생(12.16). 세례 받음(12.17). | 프로이센 왕 빌헬름 프리드리히 탄생. | 한(Hahn), 계산기 발명. 섬유기계 발명. | 타르티니 사망. 크리스찬 바흐 35세 보케르니 27세 하이든 38세 모차르트 14세 살리에리 20세 | 영조 46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 간행. 신경준, 『도로고』 편찬. 과거 시험에 탕평과 시행. 임진자(구리 활자) 제조. |
1773 | 조부 사망(12.24). | 루이 14세의 사망. 러시아 푸카초프 봉기. | 라부아지에에 의한 근대 화학의 시작. | 가소만 사망. | 영조 49년 |
1774 | 아버지 요한, 궁정 음악가가 됨. 동생 카를 탄생.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판. | 조멜리 사망. 스폰티니 탄생. | 영조 50년 사가의 형벌 금지. | |
1775 | 아버지 요한으로부터 음악교육이 시작됨. 조모 사망(9.30). | 미국독립전쟁 발발. | 볼타(Volta), 전기기기 발명. | 보일듀(Boieldieu) 탄생. | |
1776 | 피아노와 바이올린 교육이 급진전을 이룸. 막내동생 니콜라우스 요한 탄생. | 미국독립선언(7.4) | 아담스미스, 『민족들의 부의 본성과 원인론에 대한 연구』 발표. | 영조 사망. 정조 등극. 규장각 설치. 이덕무, 박제가 등, 시가시집 『건연집』 저술. | |
1777 | 라틴계 초등학교 입학 (수학과 쓰기 교육과정이 없음). | 바겐사일(Wagenseil) 사망. | |||
1778 | 쾰른에서 최초의 공개연주회(3.26). 이덴(Eeden)이 오르간을 가르침. | 안(Arne) 사망. 후멜(Hummel) 탄생. | |||
1779 | 파이퍼(Peiffer)가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 네페가 본에 도착. | 보이스 사망. | 정조 3년 규장각 외각에 검서관을 두고 박제가 등 임명. | ||
1780 | 첸저(Zenser)가 오르간을 가르침. | 오스트리아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사망. | 뮐러, 계산기 발명. | 정조 4년 홍국영 실각. 박지원 『열하일기』 저술. | |
1781 |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 공부에 몰두. 네페의 제자가 됨 (피아노를 배움). 코흐, 첸저, 로반티니 등으로부터 오르간, 바이올린, 비올라를 배움. | 프리메이슨 대신 일루미나티(Illuminati) 결성. | 실러, 『도둑때』 발표. 칸트, 『순수이성비판』 발표. | 모차르트, 비엔나로 이주 | 정조 5년 『영조실록』 완성. 규장각 도청부청사로 이전. 규장각 확대 작업. 정조의 혁신정치에 있어 중추적 역할 수행. 외규장각 강화사고. 별고 신축. |
1782 | 『드레슬러 주제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9개의 변주곡』 출판. 오르간 주자로서 네페의 대리인이 됨. 베겔러 및 브로이닝가와 친교 시작. | 루소, 『고별』 1부 출판. 제임스 와트, 증기 기관차 발명. | 요한 세바스찬 바흐 사망. 아우버(Auber) 탄생. | ||
1783 | 『3개의 클라비어 소나타』(선제후 소나타) 출판. 쳄발로 주자가 됨. 네페가 “제2의 모차르트가 될 것”이라고 기고함. 「피아노를 위한 2개의 론도(WoO.48, 49)」 작곡. | 하세(Hasse) 사망. | 정조 7년 천문학자 홍재용 사망. 자휼전칙(걸식아동 규제를 위한 법령) 반포. | ||
1784 | 유럽 오르간 연주자가 됨. 「피아노 협주곡 E플랫장조 (WoO.4)」작곡. | 막시밀리안 프리드리히 사망, 후임으로 막시밀리안 프란츠 임명. | 그레트리, 『사자왕 리처드』 출판. | 프리드리히 바흐와 마르티니 사망. 리스 탄생. 슈포어 탄생. | 정조 8년 이승훈, 천주교 전도. 정약용, 정조의 경연에서 “중용” 강의. |
1785 | 프란츠 안톤 리스의 지도로 바이올린을 배움. 「3개의 쳄발로 4중주곡(WoO.36)」 작곡. | 본 아카데미, 본대학으로 승격. | 갈루피 사망. | 정조 9년 『대전통편』 완성. | |
1786 | 본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 |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사망. | 실러, 『비열한 범죄자의 진정한 역사』 출판. 방직기 발명.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발표. 비숍과 베버 탄생. 사키니(Sacchini) 사망. | 정조 10년 서학을 금함. 김정희(추사) 탄생. |
1787 | 첫 번째 비엔나 여행. 모차르트와의 만남. 어머니 마리아 사망(7.17). 「작별할 때 부르는 술노래(WoO.109)」 작곡. | 실러, 『돈 카를로스』 발표. | 글룩 사망. 모차르트, 「돈 조반니」 작곡. | 정조 11년 홍문관과 예문관의 문장을 모은 『문원보불』 간행. | |
1788 | 발트슈타인 백작과 교분 시작. 관현악단 비올라 주자가 됨. | 괴테, 『에그몬트』 발표. | 이마누엘 바흐 사망. | 정조 12년 외교문서집 『동문휘고』 간행. | |
1789 | 아버지의 봉급 일부가 베토벤에게 지급됨. 본대학 철학과 청강생이 됨. 「12개의 장조에 의한 2개의 전주곡(Op.39)」 작곡. | 프랑스혁명 발발. | 허셜(Herschel), 토성의 6, 7번째 위성 발견. | ||
1790 | 하이든과의 만남. 「요제프 2세의 장송 칸타타(WoO.87)」와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 칸타타(WoO.88)」 작곡. | 괴테, 『파우스트, 하나의 단편』 출판. 칸트, 『판단력 비판』 출판. | 모차르트, 「여자란 다 그렇고 그런 것」 작곡. 알브레히츠베르거, 『작곡의 기본지침』 출판. | 정조 14년 순조 탄생. | |
1791 | 메르켄타임과 아샤펜부르크로의 여행. 스테르켈과의 만남. 「기사의 발레(WoO.1)」를 발트슈타인 백작의 이름으로 발표(실제는 베토벤 작곡임). |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 체포. | 토마스 제인, 『인간의 권리』 출판. | 모차르트, 「마술피리」 발표. 모차르트 사망. 체르니와 헤롤드 탄생. 하이든, 「런던교향곡」 작곡. | 정조 15년 신해박해, 양서를 금하고 책을 불태움. 천주교인 윤지충, 권상연 사형. 역사학의 아버지 순암 안정복 사망. |
1792 | 비엔나 유학길에 오름. 하이든의 제자가 됨. 솅크에게 대위법 사사. 아버지 사망(12.18). 「14개의 변주곡 E플랫장조(Op.44)」 작곡. | 프랑스 공화국 선포.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 처형. 프랑시스 2세의 승계. | 포터 탄생. 로시니 탄생. | ||
1793 |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교분 시작. | 실러, 「파토스에 대하여」 발표. | 하이든, 「6편의 현악 4중주곡」 발표. | ||
1794 | 알브레히츠베르거에게 대위법, 살리에리에게 성악 작곡법, 푀르스터에게 현악 4중주곡 작곡법 사사. | 로베스 피에르의 실각. 프랑스군에 의한 비엔나 점령. | 괴테와 실러의 해후. 피히테, 『총체적 인식론의 기초』 출판. | ||
1795 | 비엔나에서 최초의 공개 연주회(황실 극장과 부르크 극장에서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연주). 「3개의 피아노 3중주곡(Op.1)」, 「3개의 피아노 소나타(Op.2)」, 「아델라이데(Op.46)」 작곡. |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출판. 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발표. 브라마하, 수압기 발명. | 정조 19년 혜경궁 홍씨, 『한중록』 펴냄. 중국인 신부 주문모 밀입국 사건. | ||
1796 | 두 동생 비엔나로 합류. 프라하로 연주여행. 프리드리히 2세 앞에서 연주. 「현악 5중주곡(Op.4)」, 「2개의 첼로 소나타(Op.5)」 작곡. | 실러, 『발렌슈타인』 발표. | 로웨 탄생. 움라우트 사망. 하이든, 후기 미사곡. | 정조 20년 수원성 축조. | |
1797 | 출판과 교습으로 경제적 상태가 호전. |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평화조약 체결. | 셸링, 『자연철학의 개념』 발표. | 하이든, 「현악 4중주곡 (Op.76)」 작곡. 도니제티와 슈베르트 탄생. | 정조 21년 『오륜행실도』 편찬. |
1798 | 세 번째 프라하 여행. 크로이처와 알게 됨. 뵐플과의 해후. 「3개의 현악 3중주곡(Op.9)」, 「3개의 피아노 소나타(Op.10)」, 「피아노 소나타 제8번(Op.13, 비창)」 작곡. | 브라이트코프와 체르텔, 『음악신문』 창간. 슐레겔 형제, 노발리스, 슐라이어마허, 셸링에 의해 아방가르드 그룹 형성. | 정조 22년 농서를 널리 구함. | ||
1799 | 피아니스트로서 대성공을 거둠. 테레제와 요제피네에게 피아노 교습. 「2개의 피아노 소나타(Op.14)」 작곡. |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간의 제2의 연합전쟁 발발. 나폴레옹, 제1집정관. | 훔볼트, 중남미 탐험 여행. | 디터스도르프 사망. 하이든, 오라트리오 「천지창조」 초연. | |
1800 | 베토벤 자신이 주최한 첫 연주회에서 「교향곡 제1번」, 「7중주곡」 등을 연주. 체르니, 제자로 입문. 「6개의 현악 4중주곡(Op.18)」, 「피아노 소나타 제11번(Op.22)」, 「피아노 협주곡 제3번(Op.37)」작곡. | 프랑스에 최초로 은행 설립. | 볼타, 전지를 발명. 리히노프스키 공작, 베토벤에게 연금지급 시작. | 피치니(Piccinni) 사망. | 정조 24년 정조 사망. 순조 등극(11세). 김 대비(정순왕후) 수렴청정. 운서 『규장전운』 간행. |
1801 | 살리에리에게 성악을 사사. 귓병 호소하는 최초의 편지. 브룬스빅 자매와 줄리에타 기차르디, 페르디난트 리스가 제자가 됨.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Op.24)」, 「세레나데 D장조(Op.25)」, 「월광 소나타(Op.27-2)」, 「현악 5중주곡 C장조(Op.29)」,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Op.43)」 작곡. | 뤼네빌 평화조약. 나폴레옹과 교황 간의 종교 협약 체결. | 리터, 자외선 발견. 실러, 「숭고에 대하여」 발표. | 벨리니 탄생. 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 초연. | 순조 1년 공노비 해방령. 천주교 박해. 신유박해. 이가환, 정약종, 이승훈 옥사. 박제가, 두만강변 종성 유배. 정약용 유배. 황사영 백서사건. |
1802 |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Op.30)」 출판. 「3개의 피아노 소나타(Op.31)」, 「교향곡 제2번(Op.36)」, 「2개의 로망스(Op.40, Op.50)」 작곡. | 헤겔과 셸링, 『비판적 철학 잡지』 창간. | 사르티(Sarti) 사망. | 순조 2년 순조비 순원왕후, 왕비 책봉. | |
1803 | 바덴과 되블링 휴양. 「크로이처 소나타(Op.47)」, 「겔레르트 시에 의한 6개의 노래(Op.48)」, 「감람산의 그리스도(Op.85)」 작곡. | 제국대리자회의 주요 결의. 나폴레옹, 라인강 하류 합병. 영·불 해전 시작. | 기관차(광산용) 발명. | 베를리오즈 탄생. 쥐스마이어 사망. | |
1804 | 요제피네와 열애. 「피아노 소나타 제22번(Op.54)」, 「교향곡 제3번(Op.55, 영웅)」, 「3중 협주곡 C장조(Op.56)」 작곡. | 나폴레옹, 황제 선언. | 이마누엘 칸트 사망. 올리브 이반스, 증기차 실험에 성공. 실러, 『빌헬름 텔』 발표. | 글린카 탄생. 베네딕트 탄생. 요한 슈트라우스 탄생. | 순조 4년 김 대비(정순왕후), 수렴청정을 거둠. |
1805 | 「레오노레」 작곡과 초연(실패). 케루비니와의 해후. 루돌프 대공, 제자로 입문. 「피아노 소나타 제23번(Op.57, 열정)」 작곡. | 넬슨 제독, 트라팔가 해전 승리. 나폴레옹, 아우스테를리흐 전투 승리. | 보케리니 사망. | 순조 5년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작. 박지원·박제가 사망. 『정조실록』 완료. | |
1806 | 조카 카를 탄생(9.4). 「레오노레」 개작(2판, 3판).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곡(Op.59)」, 「교향곡 제4번(Op.60)」, 「바이올린 협주곡(Op.61)」 작곡. | 신성로마제국 멸망. 라인연방 결성. 나폴레옹의 베를린 입성. 제2차 비엔나 침공. | 케루비니, 『파니스카』 발표. 아르님과 브렌타노, 민요집 『소년의 마술피리』 출판. | ||
1807 | 「피아노 협주곡 제4번(Op.58)」, 「<코리올란> 서곡(Op.62)」,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2중주곡 E플랫장조(Op.64)」, 「미사곡 C장조(Op.86)」 작곡. | 풀톤(Fulton)의 첫 기선 여행. 메윌, 『요셉』 발표. 피히테, 『독일 민족에게 고함』 발표. 헤겔, 『정신현상학』 발표. | 스폰티니, 「무녀」 발표. 케루비니, 「이틀」 발표. 베토벤이 가장 훌륭한 대본이라고 칭찬. | ||
1808 | 손가락 수술. 「교향곡 제5번(Op.67, 운명)」, 「교향곡 제6번(Op.68, 전원)」, 「첼로 소나타 제3번(Op.69)」, 「합창 환상곡(Op.80)」 작곡. | 프랑스 점령에 대한 스페인의 저항운동. | 괴테, 『파우스트』 1부 발표. 고야, 「거인」.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은둔자』 발표. | 발페(Balfe) 탄생. | |
1809 | 루돌프, 로프코비츠, 킨스키 공작과 종신연금 협정. 말파티와의 결혼 추진. 「피아노 협주곡 제5번(Op.73, 황제)」, 「현악 4중주곡 제10번(Op.74)」, 「6개의 노래(Op.75)」, 「2개의 피아노 소나타(Op.78, 79)」 작곡. | 나폴레옹, 제3차 비엔나 침공. | 스폰티니의 「페르난트, 코르테즈」. 바이른, 「슈바이처 가곡」. 괴테, 『선택적 친화성』 발표. 가우스, 중력 가설 제창. | 하이든 사망. 알브레히츠베르거 사망. 멘델스존 탄생. | 순조 9년 대흉년. 김정희, 연경 여행. |
1810 | 베티나 브렌타노와의 해후. 귓병 치료차 바덴 요양. 「피아노 소나타 제26번(Op.81a)」, 「괴테에 의한 3개의 노래(Op.83)」, 「<에그몬트> 서곡(Op.84)」, 「엘리제를 위하여(WoO.59)」 작곡. | 제롬, 웨스트팔리아 왕국을 통치.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 발발(-1826). | 프러시아, 자유산업주의 시작. 음악비평가 호프만, 「운명 교향곡」을 “낭만주의 음악의 모델”이라고 함. 훔볼트, 베를린대학 설립. | 쇼팽 탄생. 니콜라이 탄생. 슈만 탄생. | 순조 10년 김정희, 완원·옹방강과 만남. |
1811 | 테플리츠 요양. 「피아노 3중주곡 제7번(Op.97)」, 「<아테네의 폐허> 서곡(Op.113)」, 「<슈테판 왕> 서곡(Op.117)」 작곡. | 오스트리아 국립은행과 로프코비츠 공작 파산. 그 결과로 베토벤이 경제적 곤경에 처함. | 리스트 탄생. 힐러 탄생. 푸케, 「물의 요정」 발표. | 순조 11년 평안도 농민전쟁 (홍경래의 난) 발발. | |
1812 | 괴테와의 해후. 급격한 청력 악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씀. 「교향곡 제8번(Op.93)」, 「바이올린 소나타 제10번(Op.96)」 작곡. | 나폴레옹, 러시아에서 패퇴. | 산업혁명에 반발한 기계파괴운동이 영국에서 발발. 킨스키 공작, 프라하에서 사고로 사망. | 두셰크 사망. | 순조 12년 홍경래의 난 평정. 효명세자 왕세자 책봉. |
1813 | 2회의 아카데미에서 하이든에 필적하는 대성공을 거둠. 「웰링턴의 승리(Op.91)」작곡. | 라이프치히의 민족해방전쟁에서 나폴레옹의 패퇴. 라인연방의 해체. | 이집트에서 상형문자의 첫 발견. | 로시니, 「탄크레디」와 「알제리의 이탈리아 소녀」 발표.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 |
1814 | 안톤 신들러와 교분 시작. 연주자로서 마지막 연주(4.11). 「<피델리오> 서곡 제3번(Op.72)」, 「피아노 소나타 제27번(Op.90)」, 「4중창과 현악기를 위한 비가(Op.118)」, 칸타타 「영광의 순간(Op.136)」 작곡. | 나폴레옹의 퇴위, 엘바 섬으로 귀양. 루이 18세 즉위. 비엔나 회의 개최. | 스코트, 『웨이벌리』. 조지 스티븐슨, 증기기관차 발명. 리히노프스키 사망. | 슈베르트, 「실 잣는 그레첸」 발표. 포글러 사망. | 순조 14년 『홍재전서』(정조의 시문집) 간행. |
1815 | 동생 카를의 사망. 「희망에 부쳐(Op.94)」, 「2개의 첼로 소나타(Op.102)」,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Op.112)」, 「명명축일 서곡(Op.115)」 작곡. | 나폴레옹, 엘바 섬 탈출. 워털루 전투에서 패퇴. | 음악미학자 벤흐, 「새로운 음악 예술과 베토벤 피델리오에 관한 고찰」이란 논문을 음악 신문에 게재. 비엔나에 기술학교 설립. | 프란츠 탄생. 헬러 탄생. 슈베르트, 「마왕」 발표. | |
1816 | 회화장을 상용하기 시작. 조카 카를의 후견인 자격 획득과 상실. 멜첼의 보청기 사용. 「멀리 있는 애인에게(Op.98)」, 「피아노 소나타 제28번(Op.101)」, 「25개의 스코틀랜드 민요(Op.108)」 작곡. | 오스트리아의 주도하에 독일연방 창설. | 요제프 프란츠 로프코비츠 사망. | 케루비니는 「진혼곡」을, 스포르는 「파우스트」를 발표. | 순조 16년 김정희, 진흥왕순수비 탐사 및 고증. |
1817 | 조카 카를의 후견인 자격을 두고, 지루한 재판이 지속됨.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악화. 「현악 5중주곡 C단조(Op.104)」 작곡. | 비엔나 음악 신문 창간. 쇼펜아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가테 탄생. 메훌 사망. 몬지니 사망. | 순조 17년 정약용, 『경세유표』 저술. | |
1818 | 브로드우드 피아노를 기증받음. 포터와 교분 시작. 「피아노 소나타 제29번(Op.106, 하머클라비어)」 작곡. | 바덴과 바카리아에 의회 설립. 카를 마르크스 탄생. 프랑스, 7월혁명. | 기선으로 대서양 횡단 성공. | 구노 탄생. 코젤루흐 사망. | 순조 18년 정약용, 유배에서 풀려남. 『목민심서』 저술. 김정희, 정약용 교류 시작. |
1819 | 「교향곡 제9번」의 작곡에 몰두. 「장엄 미사곡」 작곡 시작. | 칼스바드 칙령에 의한 언론과 대학 감시 체제. | 멜첼, 메트로놈 발명. 제리코, 「메두사로의 뗏목」. 괴테, 『서동 시집』 발표. |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오델로」 발표. 오펜바흐 탄생. | 순조 19년 김정희, 대과 급제. |
1820 | 조카 카를의 양육권 획득. 「피아노 소나타 제30번(Op.109)」 작곡. | 게바우어, ‘영성콘서트’ 창단. 암페어, 전류 특성 발견. | 스크로브 탄생. 뷰탄 탄생. | ||
1821 | 황달이 나타나기 시작. 부랑인으로 오인되어 경찰에 구금됨. 「11개의 새로운 바가텔(Op.119)」 작곡. | 그리스 독립전쟁 발발. | 헤겔, 『법철학의 기초』 발표. | 순조 21년 정조비 효의왕후 사망. | |
1822 | 로시니와의 만남. 바흐와 헨델에 대한 향수 고조. 리스트의 연주 극찬. 대중 앞에서의 마지막 지휘. 「피아노 소나타 제31번(Op.110)」, 「피아노 소나타 제32번(Op.111)」, 「헌당식 서곡(Op.124)」 작곡. | 그리스 독립선언. | 그릴파르처, 『금양모피』. 들라크루아, 『지옥의 단테와 비르길라우스』 발표. 갈리친 공, 「현악 4중주곡」 작곡 의뢰. | 슈베르트, 변주곡 「쉬세요. 착한 기사님」 헌정. 프랑크 탄생. | 순조 22년 정약용 법정서 『흠흠신서』 저술. |
1823 | 베버와 베네딕트의 방문. 리스트의 연주회 참석 격려. 「장엄 미사곡(Op.123)」완성.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곡의 변주곡(Op.120)」, 「6개의 바가텔(Op. 126)」 작곡. | 미국 먼로주의 선언. | 갈리친 공의 작곡 의뢰 수락. | 베버, 「유리안테」 작곡. 랄로 탄생. 베버, 드레스덴에서 「피델리오」 초연 성공. | |
1824 | 「교향곡 제9번(Op.125)」, 「현악 4중주곡 제12번(Op.127)」 작곡. | 부르크너 탄생. 코르넬리우스 탄생. 스메타나 탄생. 뷰오티 사망. | |||
1825 | 바덴 요양. 쿠라우와 조지스마트의 베토벤 방문. 영국 필하모니 협회의 초청. 비엔나 협회에서 명예회원으로 추대받음. 「현악 4중주곡 제12번(Op.127)」, 「3개의 현악 4중주곡(Op.127, 130, 132, 갈라친 4중주곡)」, 「대푸가 B플랫장조(Op.133)」 작곡. | 조카 카를 대학 중퇴. 동생 요한의 초대거부. | 살리에리 사망. 요한스트라우스(아들) 탄생. | ||
1826 | 「현악 4중주곡 제14번(Op.131)」, 마지막 작품인 「현악 4중주곡 제16번(Op.135)」 작곡. 폐렴 등 질병 악화. 제1차 복부천자 시행. 슈틀프, 『헨델 전집』 기증. | 조카 카를의 자살기도. | 베버 사망. | ||
1827 | 하이든과의 화해. 런던 음악동호인 협회로부터 100파운드의 위로금 받음. 종부성사를 받음(3.24). 제2, 3, 4차 복부천자 시행. 제수 요한나와 극적 화해. 파스쿠알라티, 브로이닝, 슈트라이허가 간호. 사망(3.26, 오후 5시). 제수 요한나와 휘텐브렌너가 임종을 지킴. | 나바리노의 전투. | 아우버 45세 벨리니 26세 베를리오즈 24세 브루크너 3세 체르니 36세 구노 9세 멘델스존 18세 로시니 35세 솅크 66세 슈베르트 30세 슈만 17세 바그너 14세 | 순조 27년 효명세자 대리청정. |
<출처> 조수철, 2002,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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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롤랑, 로맹 (이휘영·이성삼 역), 1993, 『베토벤의 위대한 생애』, 서울: 도서출판 두로.
솔로몬, 베이너드 (윤소영 역), 1997, 『베토벤: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 서울: 공감.
이순열, 1992, 『베토벤의 평전과 작품』, 서울: 현음사.
조수철, 1996,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 발달학적 관점,” 『정신의학』 21(1): 12-29.
_____ 1997,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들: 발달학적 관점,” 『정신의학』 22(1): 19-34.
_____ 1997,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곡: 발달학적 관점,” 『정신의학』 22(2): 121-131.
_____ 2002,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_____ 2005, 『베토벤의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발달학적 측면』 (미발표 자료).
_____ 2007,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_____ 2010, 『음악, 인간을 연주하다』,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Forbes, Elliott (ed.), 1967, Thayer’s Life of Beethove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저자 소개
기획특집 프런티어 메모랜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