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과학과 내러티브

28호 - 2020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홍성욱

 

  과학과 내러티브(narrative)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과학은 자연에 대한 진리와 사실을 발견하는 활동을, 내러티브는 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이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과학자가 서로 잘 맞지 않는 데이터를 이리저리 꿰어서 흡인력 있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유혹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훌륭한 과학자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함정으로 간주된다. 과학자는 객관적인 데이터·사실·이론을 통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내러티브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과학은 내러티브와 투쟁하여 그 정체성을 획득해 왔다. 근대적인 실험과학의 철학적 토대를 만든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참된 지식을 가로막는 네 가지 우상을 지적했는데, 이 중 ‘시장의 우상’은 잘못된 언어 사용에서 비롯한 오류였다. 과학은 모호하고 오류로 점철된 말을 사용하는 대신에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공리를 통해 자연의 진리를 드러내는 활동이었다. 베이컨을 계승해서 17세기에 새로 생긴 과학자 단체인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모토는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Nullis in verba)”였다. 실험과 관찰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어떤 권위도 믿지 말라는 의미의 이 경구는 당시 근대과학의 새 장을 연 과학자들이 공유한 정서였다. 이들에게는 오직 실험과 관찰만이 사실을 만들어냈다.[1]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보자. “실험이 사실을 만들어낸다”는 명제는 실험적으로 입증된 ‘내러티브프리(narrative-free)’ 명제인가? 어떤 권위 있는 자의 말도 믿지 말라는 얘기는 그 자체가 일종의 내러티브가 아닐까? 조금 더 삐딱하게 얘기해서 “과학이 내러티브와 무관하다”는 언명이 일종의 내러티브가 아닌가? 과학은 스스로 내러티브와 무관하다는 내러티브를 마치 사실인 언명처럼 만듦으로써 내러티브를 성공적으로 잘 사용한 학문은 아니었을까?

  이런 질문들은 20세기 합리주의 과학철학이나 머튼주의 과학사회학에서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던 것들이다. 과학에서 내러티브를 생각하는 것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확립한 과학과 문학 사이의 공고한 벽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최근에 이르러서야 과학과 내러티브를 다시 연결해 생각하려는 학문적인 연구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연구가 최근에야 등장하기 시작한 데에는 과학적 사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회구성주의, 과학적 법칙이 자연에 존재하는 것의 발견이 아니라 과학자에 의한 발명이라는 철학적 이해, 과학적 설명이나 이론에 다양한 수사학적 기제가 포함될 수 있다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2]

  필자는 이 글에서 과학의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한 세 가지 내러티브의 사례를 들면서 과학과 내러티브의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사례는 과학이 종착점에 가까워졌다는 내러티브이다. 이런 내러티브에 의하면 과학에서 의미 있는 발견은 이제 모두 이루어졌고 과학 연구에는 권태로운 측정만이 남아 있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도량형(weights and measures)의 존재를 서로 다른 언어의 존재와 비교하면서 이런 상황이 과학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내러티브이다. 이런 내러티브에 의하면 도량형의 통일은 언어의 통일과 비유된다. 마지막 사례는 진화론이 사실이면서 동시에 이론이라는 내러티브이다. 이 내러티브는 창조론과 벌이는 논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내러티브는 특정한 청중에게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데, 이 글의 결론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 내러티브가 어떤 이유에서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면서 과학에 존재하는 내러티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겠다.

종착점에 가까워지는 과학

  과학이 종착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내러티브는 뉴턴(Isaac Newton)의 수리물리학이 정점을 찍은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3] 이런 내러티브를 처음 제시한 학자는 수학에 대해서 반감을 품은 문인 겸 사상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였다. 수학화된 과학이 자연에서 질적인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앗아간다고 생각한 그는 『자연의 해석』(1754)에서 수학이 종착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우리는 현재 과학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는 시기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여러 저술가들이 도덕, 소설, 자연사, 실험과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 보건데, 나는 앞으로 100년 동안 유럽에서는 손꼽을 만한 위대한 기하학자가 세 명도 배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기하학 분야는 머지않아 베르누이, 오일러, 달랑베르가 남겨 놓은 수준에서 정체될 것이다.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세운 셈이다. 우리는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Diderot 2000: 37)

  디드로의 예언은 멋지게 빗나갔다. 18세기 중엽 이후에 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이 되자 이번에는 물리학에서 비슷한 주장이 등장했다. 187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캐번디시(Cavendish) 물리학 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소장 취임 연설에서 당시 실험물리학의 발전 때문에 물리학 분야에 더 연구할 것이 남지 않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현대 물리학의 실험이 주로 측정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성은 너무나도 분명해서, 이제 몇 년 이내에 모든 중요한 물리학 상수들의 근사 값이 구해질 것이고, 과학자들(men of science)에게는 이러한 측정을 소수점 다음 자리까지 계속하는 것만이 남겨진 유일한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습니다.(Kim 2013: 11)

  맥스웰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중요한 발견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데 물리학이 거의 종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은 맥스웰이 우려한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었다. 양자물리학을 시작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뮌헨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려고 할 때 그 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는 “이 분야에서 거의 모든 것이 다 발견되었고,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의 구멍을 메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를 말렸다. 플랑크는 이 얘기를 듣고 전공 선택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기존 지식의 토대를 더 깊게 연구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물리학을 선택했다(Lightman 2005: 8).

  에테르(ether)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임으로써 고전물리학의 토대를 흔들고 상대성이론으로 가는 길을 닦은 미국의 물리학자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은 1894년의 연설에서 물리학이 종착역에 이르렀다는 맥스웰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물리학의 미래에는 과거에 발견된 것보다 더 놀라운 경이로운 현상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기본 원리들은 확립되었고 앞으로의 발전은 주로 이 원리들을 우리가 주목하는 다른 현상에 엄격히 적용하는 데에서 추구될 것이라는 예상이 타당해 보입니다. 측정의 과학은 정성적 작업보다 정량적 결과가 더 요구되는 분야에서 특히 더욱 중요해집니다. 한 저명한 물리학자는 미래에는 물리학의 진리가 소수점 6번째 자리에서 추구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Badash 1972: 52)

  20세기에 들어와서 고전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양자역학이 출범했다. 양자역학은 특히 1920년대에 급속하게 발전했다. 그런데 새로운 양자역학을 발전시킨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은 1928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6개월 내에 종언을 고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밀리언셀러 『시간의 역사』를 저술한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도 “우리는 자연의 궁극적인 법칙에 대한 추구의 종점에 도달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호킹이 이런 얘기를 한 시점에 과학 커뮤니케이터 존 호건(John Horgan)은 『과학의 종말』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호건 1997; Schaffer 2000).

  과학이 종착역에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탐험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발견을 기다리는 지구상의 처녀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과학이 발전하면서 발견을 기다리는 미지의 주제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학 연구는 탐험과 다르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자연을 변형함으로써 날것 그대로인 자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을 탐구한다. 전자기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옴(Ohm)의 법칙은 실험실 밖의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학자들이 다루는 화학 반응도 대부분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입자물리학자들은 가속기를 이용해서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입자들을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이용해서 ‘제2의 자연’(Second Nature)을 창조한다.[4] 이렇게 보면 인간의 창작품인 예술과 문학에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과학에도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량형과 언어

  표준화되지 않은 도량형이 일상생활은 물론 과학 연구에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5] 근대과학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을 언어의 혼란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17세기 근대과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자 ‘보편 언어(universal language)’를 주창한 존 윌킨스(John Wilkins 1668: 190-193)는 “지구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의 언어에서 다른 것처럼 도량형의 종류와 비례에서도 서로 다르다”고 한탄했다. 1783년에 영국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83; Tunbridge 1992: 86에서 재인용)는 프랑스·독일·영국의 도량형이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국의 실험과 자신의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와트의 친구인 다른 엔지니어도 자신이 출판한 책에 “도량형은 …… 마치 여러 나라들의 언어가 일치하지 않듯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적었다(Whitehurst 1787: ii).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정치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역시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불편 다음으로 불편한 것이 상이하고 임의적인 도량형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고, 이런 문제를 동료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에게 알려주었다.[6] 이에 영향을 받은 제퍼슨은 “미국의 도량형과 주화의 통일성에 대한 확립”에 대한 문서 초안을 작성했다.[7]

  도량형의 통일을 꾀한 다른 정치인들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정치인 존 로드 스윈턴(John Lord Swinton)은 『스코틀랜드의 도량형 통일을 위한 제언』(1779)에서 도량형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언어의 혼란과 비교했다.

  같은 목적을 위해 크기와 이름이 다른 도량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사람들에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법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상이한 도량형이 이름이 같은 경우에는 상황이 더 나쁘다. 왜냐하면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같은 이름으로 서로 다른 것을 말한다는 것과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모른다면 엄청난 오류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Swinton 1779: 2)

  스윈턴의 이런 지적은 뉴포트(Newport)의 의원 존 리그스 밀러(John Riggs Miller)를 자극해서 도량형 통일에 대한 법안을 제출하도록 만들었다. 밀러는 이 필요에 대해서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스윈턴을 인용해서 도량형의 통일이 왜 필요한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존 스윈턴 경이 말하기를,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고는 한 교구에서 다른 교구로, 혹은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법이나 사전도 이런 학습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 10마일만 여행하면 1에이커는 1에이커가 아닙니다. 대장장이 가게에서 잡화점으로 건너가면 1파운드가 1파운드가 아닙니다. 맥줏집에서 선술집으로 가면 1갤런이 1갤런이 아닌 것입니다.(Miller 1790)

  영국만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미터법의 제정을 주창한 학자들도 다양한 도량형의 존재를 바벨탑에 비유했다. 프랑스의 도량형 제정을 분석한 과학사가 켄 앨더(Ken Alder)의 연구는 당시 프랑스 학자들이 “도량형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물건과 정보의 교환에 이성적인 질서를 부여할 보편적인 도량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잘 보여준다(앨더 2005: 11).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전설에 따르면 세상이 타락하기 전에는 단 한 언어와 단 한 도량형만이 존재했다. 그런데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오만에 격노한 신이 다양한 언어를 만들어서 인간들 사이의 소통을 교란하였듯이,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도량형이 만들어져서 무역과 과학의 소통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혼란과 도량형의 혼란은 기원이 같으며, 한 도량형을 제정하는 것은 한 보편적인 언어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이는 이성적인 질서를 세워서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순수한 세상으로 회귀하는 일이었다.

  도량형의 표준에 앞서간 나라는 프랑스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혁명정부는 과거의 도량형을 버리고 자연에서 찾은 표준으로 새로운 미터-그램 도량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미터법을 제정한 뒤에 독자적인 단위를 사용하던 영국에서는 이런 미터법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특히 미터법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려는 프랑스의 노력에 영국 과학자들이 거세게 저항했다. 왕립학회 회원인 제임스 부스(James Booth 1853: 162)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제도, 관습, 매너, 심지어 종교까지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의 이름을 바꾸게 하는 것처럼 가능성 없는 것도 없다”고 하면서 프랑스 미터법을 영국에 도입하는 것을 반대했다. 과학자 조지 셕버러(George Shuckburgh 1798: 165-166)도 “일상생활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물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는 아무런 이점이 없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선조의 언어를 유지하듯이 우리의 도량형을 유지하기를 제안한다”고 했다.

  이렇게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과학자들은 도량형과 언어를 비교하는 내러티브를 반복해서 구사했다. 어떤 때에 이런 내러티브는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한 소통의 불편함에 호소하면서 도량형들의 통일을 요구하는 데 쓰였고, 다른 때에는 모국어를 바꾸기 힘든 점을 호소하면서 외국 도량형의 유입을 저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언어와 도량형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는 과학자 공동체만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도량형의 중요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과학을 이해하기 힘든 정치인들에게 일상 언어처럼 현실 세계와 맞닿은 내러티브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이 처한 문제점을 이해시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후원을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이자 이론인 진화론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사이의 논쟁에서 창조론자는 진화는 이론(theory), 즉 가설(假說: hypothesis)에 불과할 뿐이지 확고한 사실(fact)이 아니라고 비판하곤 한다. 이에 대해 진화론자는 진화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확고하게 정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논변한다. 이렇게 진화가 이론이자 동시에 사실이라는 내러티브는 진화론에 대한 비판자들과 벌이는 논쟁, 특히 창조론과 벌이는 논쟁에서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진화가 사실이자 이론이라는 내러티브는 20세기 내내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다.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는 1932년에 출판한 책에 『진화, 사실과 이론』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이 사실이자 이론인 진화라는 내러티브가 처음 나타난 사례였다. 이후 유명한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사실과 이론으로서의 진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진화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사실이다”라고 적시했다. 생물학자 리처드 렌스키(Richard Lenski)는 “과학적 이해는 사실을 정합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사실과 이론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진화는 동시에 사실이자 이론이다.”라고 기술했다. 생물학자 그레고리(T. Ryan Gregory)도 “진화가 적절한 의미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되어야 할 진화의 사실이 있고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잘 지지된 기계적인 틀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진화가 사실이자 이론이라고 주장했다.[8]

  진화생물학자인 푸투이마(Douglas J. Futuyma)는 1985년에 출판된 논문에서 이론이자 사실인 진화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나 이론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면, 이것은 다윈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이전에 존재한 공통 조상에게서 유래했다는 명제로서의 진화가 플로지스톤이나 생기력과 같은 운명에 처할 “그저 이론일 뿐”임을 의미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진화라는 사실은 이렇다. 살아있거나 죽은 모든 유기체는 공통 조상에게서 변이를 수반한 계승의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수염벌레, 포데로사 소나무, 인간, 우리가 30억 년 전의 돌에서 발견하는 박테리아 모두에 끊어지지 않는 물질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진화의 이론은 이러한 변화의 역사를 만든 기제, 힘, 사건에 대한 평가이다. 이런 이론은 계속 변화한다.(Futuyma 1985: 4)

  이론인 진화론은 계속 다듬어지지만 사실인 진화는 불변이라는 것이다. 2008년에 유전학자인 맥패든(Johnjoe McFadden)은 『가디언』지에 실린 대중적인 글에서 이런 논점을 다시 강조했다.

  지금까지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을 사용해서 자연 세계를 이해해 왔다. 창조론자들(그리고 ‘지적 설계론’의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진화는 단지 이론만이 아니다. 그것은 중력이나 부식(erosion)과 같은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수많은 생명체에서 진화적 변화를 측정해 왔다.[9]

  그런데 ‘진화는 이론이며 동시에 사실이다’라는 명제는 철학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주장일까? 이 명제는 특정한 시기 이후에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는 이 명제가 생물학자들이 만들어낸 내러티브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내러티브인 이유는 한 대상이 동시에 사실이면서 이론이라는 것이 철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에서 볼 때 사실과 이론은 그 층위가 상이하다. 사실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얻은, 검증 가능하거나 반증 가능한 데이터이다. 반면에 이론은 그 데이터에 대한 설명 원리를 뜻한다. 물론 사실에서 가설을 거쳐서 이론으로 이어지는 인식의 사다리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이 같다고 볼 수는 없는데, 설명되는 대상과 설명의 원칙이 같은 층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Jean and Lu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사실이며 동시에 이론이다’라는 내러티브는 2008년에 미국 과학아카데미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창조론자들의 지속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진화‘론’만을 강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생물학자가 진화가 이론이자 동시에 사실임이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은 마치 진화론의 불확실성을 찾아내서 진화 자체를 부정하는 창조론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진화론의 과학적 지위가 진화가 이론이며 동시에 사실이라고 함으로써 상승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미래에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관계가 더 호의적이 된다면 그때에는 비로소 주류 생물학자들이 ‘진화가 사실이자 이론이다’라는 명제의 장단점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서 내러티브

  과학 논문은 은유나 유비 같은 수사학적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실로만 이야기한다고 간주된다. 논문을 심사하는 심사자는 논문의 저자가 현란한 수사로 데이터의 약점을 감추지는 않았는지 세세하게 살펴보며, 수사적 표현이 많은 논문에 감점을 준다. 과학 논문의 세 가지 핵심적인 장점은 짧고, 명확하고, 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을 모두 갖춘 논문으로 평가되는 것이 DNA가 이중나선임을 보임으로써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과 크릭((James Watson and Francis Crick)의 Nature 논문(1953)이다(Tobin 2003). 이 논문은 불과 842단어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것이었고 매우 건조한 문체로 씌었지만 20세기 생물학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논문으로 꼽힌다. 실제로 이후 많은 과학도가 이 논문을 모델로 과학 논문을 쓰는 법을 익히곤 했다.

  크노르체티나(Karin D. Knorr-Cetina)는 과학자들이 논문 쓰는 과정을 직접 옆에서 관찰하면서 분석한 과학기술학자이다. 그가 관찰한 과학자는 초고를 쓴 뒤에 논문을 출판할 때까지 무려 16번이나 자신의 논문을 수정했다(Knorr-Cetina 1981). 크노르체티나에 의하면 이 과학자가 이렇게 여러 번 논문을 수정한 이유는 과학 논문에 내포된 독특한 설득을 최적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과학 논문은 보여주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많은 글쓰기 형태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서론에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의 재원과 가능성을 강조하지만 이해관계나 필요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는 전략을 택한다. 덧붙여서 과학자는 논문이 담는 연구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결과가 이런 국지적 맥락과는 무관한 것처럼 최대한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자가 논문을 계속 고치는 것은 그가 동료 과학자들을 고려하면서 논문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야하는지 면밀하게 계산하기 때문이다. 과학 논문의 이런 특성을 이해한다면 과학 논문 속에서도 일종의 내러티브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학은 공동체의 활동이다. 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연구는 의미가 없다. 공동체 내의 실행은 기본적으로 설득의 게임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끊임없이 평가해야 하며, 유력 정치인들의 후원을 얻어내야 하고, 반대자들과 효율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자신과 타인을 설득한다. 과학이 종착역에 이른 것은 아닌지, 도량형의 통일이 언어의 통일과 흡사한 것은 아닌지, 진화가 사실이면서 동시에 이론인지를 반복해서 고민한다. 과학의 내러티브는 과학 논문 속에, 과학자들이 쓴 책 속에, 대중적인 연설 속에, 논쟁 속에서 모두 발견된다. 과학의 내러티브는 과학이 인간의 활동이며 동시에 인간이 모인 공동체의 활동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후속 연구가 과학의 인문학적 측면을 드러내면서 과학을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운 것으로 다가오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대우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고문헌

    앨더, 켄 (임재서 역), 2005, 『만물의 척도』, 서울: 사이언스북스.

    호건, 존 (김동광 역), 1997, 『과학의 종말』, 서울: 까치.

    홍성욱, 2020(예정), 『내게 실험실을 달라』, 파주: 김영사.

    홍성욱, 미출간, “Languages of Measure.”

    Badash, Lawrence, 1972, “The Completeness of Nineteenth-Century Science,” Isis 63: 48-58.

    Booth, James, 1853, “Discussion of Prof. Jack,” Journal of the Society of Arts 1: 157-164, 205.

    Diderot, Denis, 2000, 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Other Philosophical Works, Manchester: Clinamen Press.

    Futuyma, Douglas J., 1985, “Evolution as Fact and Theory,” Bios 46: 3-13.

    Hellman, C. Doris, 1931, “Jefferson’s Efforts toward the Decimalization of United States Weights and Measures,” Isis 16(2): 266-314.

    Jean, Jason and Yixi Lu, 2018, “Evolution as a Fact? A Discourse Analysis,” Social Studies of Science 48(4): 615-632.

    Kim, Dong-Won, 2013, Leadership and Creativity: A History of the Cavendish Laboratory, 1871-1919, Dordrecht: Kluwer.

    Knorr-Cetina, Karin D., 1981, The Manufacture of Knowledge. An Essay on the Constructivist and Contextual Nature of Science, Oxford: Pergamon.

    Lightman, Alan P., 2005, The Discoveries: Great Breakthroughs in Twentieth-century Science, Including the Original Papers, Toronto: Alfred A. Knopf.

    McFadden, Johnjoe, 2008, “Survival of the Wisest,” Guardian(30 June).

    Miller, John Riggs Sir, 1790, Speeches in the House of Commons upon the Equalization of the Weights and Measures of Great Britain with Notes, Observations, &c. &c. also A General Standard Proposed for the Weights and Measures of Europe, London: J. Debrett.

    Schaffer, Simon, 2000, “Fin de Siècle, Fin des Sciences,” Réseaux 18: 216-247.

    Shuckburgh, George, 1798, “An Account of Some Endeavours to Ascertain a Standard of Weight and Measur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88: 133-182.

    Swinton, John, 1779, A Proposal for Uniformity of Weights and Measures in Scotland, Edinburgh: Charles Elliot.

    Tobin, Martin J., 2003, “April 25, 1953. Three Papers, Three Lessons,” American Journal of Respiratory and Critical Care Medicine 167: 1047-1049.

    Watt, James, 1783, James Watt to Robert Kirwan, 14 Nov., quoted from Paul Tunbridge, 1992, Lord Kelvin: His Influence on Electrical Measurements and Units, London: Peter Peregrinus.

    Whitehurst, John, 1787, An Attempt toward Obtaining Invariable Measures of Length, Capacity, and Weight, from the Mensuration of Time, Independent of the Mechanical Operations Requisite to Ascertain the Center of Oscillation, or the True Length of Pendulums, London: Printed for the Author.

    Wilkins, John, 1668, An Essay Towards a Real Character, and A Philosophical Language, London.

    Wise, M. Norton, 2011, “Science as (Historical) Narrative,” Erkenntnis 75: 349-376.

  • [1]

    “History of the Royal Society,” https://royalsociety.org/about-us/history

  • [2]

    과학과 내러티브에 대한 최근 연구로는 2017년 과학사·과학철학 분야의 학술지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Part A)의 “Narrative Science and Narrative Knowing” 특집호에 실린 논문을 참고하면 된다. 과학사가 M. Norton Wise(2011)는 물리학에서 시뮬레이션을 사용한 설명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성장시키는(growing) 역사적 형태의 내러티브를 이용한 설명이라고 해석한다.

  • [3]

    이 소절의 논의는 많은 부분이 Lawrence Badash(1972)와 Simon Schaffer(2000)에 기초를 둔다.

  • [4]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신간 『내게 실험실을 달라』(2020년 출판 예정)를 참조.

  • [5]

    이 절의 논의는 필자가 작성 중인 논문 “Languages of Measure”에 근거를 둔다.

  • [6]

    매디슨과 제퍼슨에 대해서는 Hellman(1931) 참조.

  • [7]

    James Madison to James Monroe, 28 April 1785. 이 편지는 Hellman(1931)에서 인용했다. 같은 논문의 309쪽에 있는 Jefferson’s letter to David Rittenhouse(12 June 1790)도 참조.

  • [8]

    사실과 이론으로서의 진화라는 내러티브의 사례는 “Evolution as Fact and Theory” 위키피디아 항목에서 인용한 것이다. 

  • [9]

    Johnjoe McFadden, “Survival of the Wisest,”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08/jun/30/evolution

저자 소개

홍성욱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2022년 2월에 설립된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의 초대 학과장이다. 과학기술과 사회(STS), 과학기술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술 재난과 1970년대 박정희 시기의 기술입국 이념의 형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