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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엥겔스 탄생 200주년] 엥겔스와 마르크스주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1. 엥겔스와 마르크스주의의 형성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현대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함께 창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820년 11월 28일 프로이센의 바르멘(Barmen)이란 도시에서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세기 유럽사의 격변기에 마르크스와 함께 자본주의사회를 변혁하고자 한 사회주의(한층 급진적인 공산주의를 포함한) 운동에 평생 헌신했다.[1] 두 사람은 1844년 20대의 나이에 만난 직후 부터 의기투합해 일찍부터 『공산당선언』(1848)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공동 저술했고, 그 후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필생의 저술에 몰두할 때 엥겔스는 여러 이론적 저술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라 알려진 사상 체계는 『반(反)뒤링론』(1878)을 비롯한 엥겔스의 후기 저작들을 골간으로 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엥겔스의 이 작업은 19세기 후반 유럽 노동계급 운동이 성장하는 데에 따른 적극적 대응이자 아나키즘을 비롯한 다른 경쟁적인 사상들에 맞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다. 엥겔스의 후기 저술들은 당시 노동계급 운동가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해 마르크스주의의 대중적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적 확산은 『공산당선언』도 아니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아닌, 엥겔스의 『반뒤링론』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과장만은 아니다.
하지만 엥겔스가 체계화한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의 원래 사상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논란이 20세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일생에 걸친 관계로 볼 때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견해와 그렇게 볼만한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상적 일치를 당연시하는 입장과 후기 엥겔스의 사상을 마르크스 사상의 일탈이나 속류화라고 비판하는 입장이 있다. 또 양자를 대립시키는 데 반대하는 견해 가운데는 그 대립화가 엥겔스를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마르크스 사상에 존재하는 약점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견해도 있다. 전체적인 정황으로만 본다면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를 상정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적지 않은 공동 저술의 존재라든가, 40년간 교환한 서신이 거의 1400통에 이른다든가, 마르크스 사후 미완으로 남은 『자본론』 2권과 3권의 원고를 엥겔스가 완성 출간했다든가 등등, 40년간 지속된 깊은 우정과 공동 작업은 그야말로 세계 사상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엥겔스의 후기 저작에서 마르크스 사상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 차이가 이런저런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핵심적 사상에서 확인된다는 사실에 이르면 난감함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19세기든 오늘날이든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은 토지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제(혹은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사회적·집단적 소유를 확립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부분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발견된다면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사회주의는 ‘개인적 소유’를 확립하는 것?
물론 두 사람은 1840년대부터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제를 폐지하고 사회적·집단적 소유제를 확립하는 것임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주저 『자본론』(1867)에서 그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주장을 남기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성과인 협업과 생산수단의 공동점유를 토대로 해서 “개인적 소유”를 확립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2] 그래서 1870년대에 뒤링(Eugen Dühring)이란 인물은 마르크스가 사회적 소유를 또한 개인적 소유라 함으로써 ‘개인적 소유인 동시에 사회적 소유’라는 기괴한 잡종 소유 형태를 만들어냈다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한 엥겔스의 반박은 간명했다. 그는 『반뒤링론』에서 “적어도 독일어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소유는 토지와 여타 생산수단에 적용되고 개인적 소유는 생산물, 즉 소비대상에 적용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것”이라 반박했고(20: 122) 이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소비대상의 개인적 소유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강령으로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엥겔스의 이 반박에는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지금 마르크스가 논의하는 주제가 생산수단일 뿐 소비대상이 아닌 데다 자본주의에서도 소비대상의 개인적 소유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굳이 확립한다고 하는 것은 문맥상으로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론』의 바로 그 절에서 마르크스는 ‘개인적 사적 소유’를 자영농과 수공업자같이 자기 생산수단을 소유하면서 노동하는 소경영 체제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소경영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개성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생산수단의 분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을 대규모로 집중화하는 자본주의로 인해 더 이상 지배적인 형태가 되기는 어렵다는 논지였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는 것은 대규모로 집중화한 생산수단에서(즉 공동점유된 상태에서) 과거에 소경영 체제가 보장해 준 개성의 발전을 차원 높게 실현한다는 뜻이었고, 마르크스는 이것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association)을 통해 가능하리라 보았다. 엥겔스가 편집해 출간한 『자본론』 3권에서도 마르크스는 “합리적 농업은 자영 소농의 손길이나, 아니면 연합된 생산자들에 의한 관리를 요한다”고 말함으로써 후자가 자영 소농의 개인적 소유의 차원 높은 실현임을 암시하고 있다(25: 131). 마르크스에게 개인적 소유는 사회적 소유의 반대 형태가 아니라 착취/예속에서 벗어나 개성의 실현이 가능한 소유를 뜻했고, 그런 의미에서 계급적 소유의 반대 형태였다. 그는 『프랑스 내전』(1871)에서도 “계급적 소유를 폐지”해 생산수단을 자유롭고 연합된 도구로 바꾸는 것을 “개인적 소유를 실현”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17: 342).
이것을 엥겔스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수수께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발상은 두 사람의 공저 『공산당선언』에서도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선언』에서 그들은 사적 소유제를 폐지하고 사회적 소유제를 확립하더라도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변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상실할 뿐”이라 주장하는데(4: 476), 이는 개인적 소유가 이미 자본주의적 집중화에 의해 붕괴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당대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도그마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발상 때문이었다. 동시대의 사회주의는 근대사회의 소유 문제에 대해 개인 우위냐 사회 우위냐 하는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에 이미 사회가 낯선 힘(집중화된 자본)으로 개인들 위에서 지배하고 있는데도 이 낯선 힘을 개인들의 힘으로 회복하는 과제 대신에 거꾸로 개인들에 대한 사회와 공동체의 우위를 목표로 상정한다는 것이었다. 사회란 것은 개인들 관계의 총합일 뿐이기에 소유 문제를 생산수단을 둘러싼 개인들의 관계가 지배-예속이냐 자유냐 하는 문제, 즉 계급의 문제로 접근해 그 폐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두 사람의 공저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는 ‘개성’의 실현이 절박한 과제가 된 이유를 근대 자본주의사회에 특유한 계급 관계에서 찾는다. 개인의 개성에서 분리할 수 없는 전근대적 신분과 달리 ‘계급’은 개인들이 추상적이고 사물적인 지배-예속 관계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이 등장한 근대적 현상이라는 것이다(3: 46). 근대 자본주의사회는 집중화된 생산수단이 소수에게 독점되면서 다수 개인들에게 낯선 사물적 힘으로 맞선 사회이고, 그것은 개인적인 규정들과 무관한 화폐경제의 비약적 발전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화폐의 전면적 보편화가 없다면 자본주의 특유의 끝없는 축적은 한정된 인간 욕구와 생산물의 제한적 범위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폐가 전면적으로 보편화한 체제하에서 개인적 관계는 사물을 매개로 한 관계로 변형되고 신분적 특권 대신 법률이 지배적인 국가 역시 추상적이고 사물적인 억압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평생 사회주의사회의 목표로 ‘평등’이란 구호를 내걸지 않고 ‘자유로운 개성’의 실현을 강조한 것은 근대사회에 대한 이런 인식에서 비롯하였다. 사회와 공동체 앞에서 개인들의 평등화는 개성을 말살하는 평준화의 위험을 낳으리라는 것이다. 엥겔스 역시 이 점에서는 마르크스 못지않게 단호했다. 『반뒤링론』에서 그는 “계급 폐지를 넘어서는 그 모든 평등에 대한 요구는 필연적으로 불합리에 이른다”고 하면서 사회주의를 평등의 왕국으로 연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20: 99). “사회주의사회를 평등의 왕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 평등, 우애’라는 낡은 관념에서 비롯된 일면적인 프랑스적 관념으로 그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의 발전단계로는 정당화되겠지만, 이전 사회주의 학파의 모든 일면적인 견해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이제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19: 7)
이렇듯 개인적 소유에 대한 엥겔스의 해명은 엉뚱하게 빗나간 것이지만, 그렇다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소비대상의 개인적 소유라는 명제 자체가 현실적 실천에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과 대립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 역시 그 명제의 내용만큼은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엥겔스의 풀이가 마르크스의 원래 뜻과 어긋나는 바람에 중요한 점을 가리는 것은 분명하다. 가령, 자영농과 수공업자들의 소경영 체제를 개성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이들을 적대시하면서 소유 재산을 빼앗아 사회적 소유 형태로 바꾸는 억압적 사회주의 방식의 발상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소경영 체제 복귀를 역사를 뒤로 돌리는 것으로 보았지만, 그럼에도 소경영 소유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좇아 스스로 사회적 소유의 방향에 동참할 때까지 사적 소유권 폐지를 서둘러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이 엥겔스의 풀이가 원뜻과 달라지는 바람에 사라져버린 것은 마르크스의 독특한 문제의식이다.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는 발상에는 노동자들이 자기 생산수단에 대해 느끼는 친숙함이 대규모 생산수단 앞에서도 개인들의 연합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인식, 더 나아가 인간이 타자 및 대상과 맺는 관계에서 어떻게든 개성을 발현하고 친숙함을 회복할 수 있다는 소외 극복의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3. 두 사람의 지적 관계, 그 수수께끼
이렇듯 ‘개인적 소유’라는 주제에서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생각을 엉뚱하게 오해했다면 과연 두 사람의 지적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단 두 사람을 아예 한 사람처럼 간주하는 태도는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수수께끼가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반뒤링론』을 알았고 심지어 경제학 부분의 한 장을 직접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엥겔스가 엉뚱하게 해석하는 이 부분을 보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의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렇듯 두 사람의 지적 관계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여러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완벽하게 해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엥겔스의 후기 저술들을 보면 그가 마르크스 사상에 고유한 어떤 것을 충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있다. 어쩌면 여기서 이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산수단의 소유 문제에서 사적 소유/사회적 소유라는 범주 외에 계급적 소유/개인적 소유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개인적 소유를 회복한다는 발상의 근저에는 근대사회의 소외와 물신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뚜렷한 비판적 의식이 있으며 여기엔 인간과 사물,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유 방식이 있다. 그것은 세상의 온갖 사물과 인간이 특정한 관계들의 복합체로 존재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 관계에서 개성이 드러나고 발현된다는 발상이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추상적·사물적 억압에서 개성을 회복한다는 사고가 마르크스 사상 저변에 한층 깊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낯섦과 친숙함을 판별하는 소외라는 범주는 마르크스 사상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특히 ‘체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유별난 거부반응도 인간과 사물을 특정한 관계들의 복합체로 보는 이러한 현실관, 사물관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남이 자신의 생각을 ‘체계’로 지칭하는 데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였고 언제나 자기 작업을 ‘비판’이나 ‘분석’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가령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체계” 운운하는 일상적인 지칭에 대해서조차 그는 “나는 결코 사회주의 체계를 수립한 적이 없으니 이는 환상”이라고 반발하며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19: 357). 자신은 “심지어 노동자들을 직접 염두에 두고 쓴 『공산당선언』에서조차 모든 종류의 체계를 거부”했다는 것이다(14: 449). 마르크스가 적극 표방한 반(反)체계의 과학은 개인들의 삶과 특정한 관계들로 형성되는 특정한 총체성을 상정하기 때문에 훗날 마르크스주의가 표방하는 보편적 역사철학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래서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대립이 겉보기에도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다윈(Charles Darwin)을 둘러싼 논의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사망 직후 추도사에서 “다윈이 유기적 자연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듯이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을 발견하였다”고 말했지만(19: 335), 마르크스는 생전에 자신과 다윈을 나란히 놓을 때 엥겔스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형태도 끊임없는 변화 과정에 있는 특정한 산물이기에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서 특정하게 작용하는 역사적 법칙을 해명할 수 있을 뿐이라 주장했고, 바로 이 점에서 다윈이 자연사에서 자신과 유사한 일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생각을 충실히 따른다면 그 추도사는 당연히 “다윈이 유기적 자연의 보편적 발전 법칙을 부정했듯이,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을 부정했다”는 내용이 되어야 했다. 마르크스가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작업과 나란히 놓은 것은 진화론이 자연사에서 새로움의 발생을 비목적론적으로 밝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다윈의 반(反)체계 사상으로 높이 평가했다.
요컨대 근대 철학의 계보 안에서 급진적 계몽주의의 계승자인 엥겔스는 마르크스 사상에 고유한 반(反)체계 사상과 그 밑에 깔린 도저한 개인주의를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 철학의 틀 전체를 뒤집고자 한 전복의 사상가 마르크스를 둘도 없는 친구 엥겔스도 다 이해하지못했고, 결국 엥겔스가 구축한 마르크스주의 체계는 우리 시대의 낯익은 근대주의적 사고에서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엥겔스가 마르크스에 반(反)해서 마르크스주의를 발명해 냈다고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가령, 사회주의를 평등의 왕국으로 연상하지 말자는 엥겔스의 주장이 마르크스의 개인적 소유론의 발상과 통하듯이 그와 마르크스의 사상적 대립을 그리 간단히 단정하여 말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잘 알려진 마르크스의 발언에 대해 만년의 엥겔스가 전하는 정황만 보더라도 그렇다.
요즘엔 유물론적 역사관을 역사를 연구하지 않기 위한 구실로 삼는 친구들이 많지. 마르크스가 70년대 말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난 마르크스주의자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야.(37: 436)
엥겔스의 이런 질타가 단순히 역사 연구 많이 하라는 권유는 아닐 것이고 유물론적 역사관의 명제를 적용하고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하라는 당부도 아닐 것이다. 이것은 그가 뒤이어 말하듯이 “우리의 역사관은 헤겔 철학에서처럼 구성의 지렛대가 아니라 연구의 지침(Anleitung)이기에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정신에서만 그 의의가 되살아날 수 있는 당부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체계의 정신 역시 엥겔스 사상의 살아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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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유재건, 2015, “사회주의,”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편, 『역사용어사전』,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pp. 884-895.
Marx, Karl and Friedrich Engels, 1953ff., Werke, Berlin: Dietz Verlag.
- [1]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 초반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껏 역사적으로 각기 다르게 쓰여왔다. 다만 1860년대 이후에는 사회주의란 용어가 더 포괄적이면서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유재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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