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이야기꾼 인간 (Homo Narrans)'과 역사

28호 - 2020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기봉

1.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이야기

  부여에 가면 낙화암이 있다. 부여를 여행하거나 답사를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부소산을 한참 올라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白花亭)’이란 정자에 이르러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진 경치는 좋지만 아래로는 별로 보이는 게 없어서 실망한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금강을 유람하는 배를 탄다. 그 부근을 지날 때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巖)이란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절벽은 그렇게 크지도 않은 나지막한 언덕 정도다. 유명한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언덕도 마찬가지다. 유람선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로렐라이 노래를 약간 지겨울 정도로 듣다가 어느 지점에 다다라 배가 회항을 할 때쯤 저쪽에 보이는 큰 바위가 로렐라이 언덕이라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어느 게 그 유명한 바위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낙화암이든 로렐라이 언덕이든 그 자체로는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곳을 가서 보고자 하는가? 한마디로 거기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낙화암에는 백제의 멸망과 삼천궁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만약 그 이야기가 없었다면 1300년이 넘은 과거의 일에 대해 모를 것이며 낙화암이란 이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로렐라이 언덕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역사 관광의 대부분은 실제 풍경을 보러 가기보다는 이야기를 소비하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는 말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것이고, 그 정보란 대체로 이야기로 전달된다. 그래서 역사 관광 여행을 가서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들으며 볼 때 역사 지식은 물론 재미도 얻는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신과 함께 사라진다 해도 인간이 남길 수 있고 남는 것은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그 소설의 마지막에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의 의미를 설명하는 문장이 나온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여기서 그 덧없는 이름을 남기는 방식이 바로 이야기다.

2. ‘호모 사피엔스’ 인류(人類)에서 ‘호모 나랜스’ 인간(人間)으로 진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출생으로 이 세상에 생겨났다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존재다. 그렇다면 사라진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라는 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이야기는 이쪽 현실 세계에서 저쪽 허구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다. 그 다리 덕분에 인간은 동물 가운데는 유일하게 사후 세계를 믿는 종교의 차원을 열었고, 현실과 허구의 두 세계를 오가는 삶을 산다.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더불어 허구라는 두 세계를 살게 된 것이 인류 문명의 성공의 열쇠라는 책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떠오른 역사가가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다. 그는 인간이 언어를 매개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성과로 인지 혁명이 일어났고, 그것이 인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라 했다. “전설, 신화, 종교는 인지 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지 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하라리 2015: 48)

  선사시대 인류는 사자, 호랑이, 독수리, 늑대, 곰과 같은 특정 동물을 매개로 집단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들은 자기 종족의 기원을 그 동물과 연관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화를 통해 그런 특성을 발현하였다. 문화인류학에서는 그런 이야기의 대상을 토템(totem)이라 부른다. 토템이란 “가족이나 씨족의 상징물이자 자주 그 조상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대상”[1]을 지칭한다. 대략 농업혁명이 일어난 신석기시대에 각 씨족이 특정한 동식물을 자기 씨족의 수호신으로 삼는 토테미즘(totemism)이 나타났다. 한국인들의 경우 민족의 시조로 생각하는 고조선의 창업 왕인 단군에 관한 신화는 곰 토테미즘에서 유래했다. 민족과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할 수 있는 정통성의 근거도 따지고 보면 신화와 종교에서 시작해서 율령과 헌법, 역사와 같이 인간이 만든 이야기나 텍스트다.

  인류사에 수많은 종족과 집단이 있었다. 그 가운데 정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역사를 남긴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 업적을 이룩할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이 실제 삶의 인간관계를 토대로 형성하는 집단 규모의 한계치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유명한 연구를 한 문화인류학자가 옥스퍼드대학교의 로빈 던바(Robin Dunbar)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 심지어 대학의 교수들까지도 구내식당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조사해 보면 중요하고 필요한 것에 대해 대화하기보다는 잡담과 수다를 떠는 성향이 많다고 했다. 그런 성향은 ‘슬기로운 인류’라기보다는 ‘이야기꾼 인류’의 속성을 대변한다. 그 속성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이던 인류가 ‘사회적 동물’의 특성이 있는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던바가 밝혀낸 연구 성과다.

  인간은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지만 유인원들은 털 고르기를 한다. 유인원의 경우 누구와 털 고르기를 하느냐로 친소 관계가 결정되며 결속을 이루는 집단이 형성된다.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친교 집단의 크기가 결정된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남는 시간에만 털 고르기를 할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한 종이 임의의 서식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최대’ 규모는 ‘시간 예산 분배 모델’에 의거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던바 2015: 96). 일반적으로 털 고르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의 상한선은 20%이고, 침팬지의 경우는 집단의 임계치가 대략 54마리다. 그런데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털이 적기 때문에 털 고르기가 교제 수단으로 유효하지 않다. 그 결핍을 보상해 준 게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손으로 하는 것보다도 쉽지만 훨씬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를 확대했다. 던바는 그 최대 인원이 150명라는 걸 밝혀냈고, 그 임계치는 그의 이름을 따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불린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던바의 수’가 설정하는 한계치를 넘어설 수 있는 마법을 선사했다. 인간은 이야기 덕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에 살았던 조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 태어날 후손까지 포함해서 역사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는 마술을 부릴 수 있게 됐다. “스토리텔링은―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상이 누구였고 우리는 누구이며 또 어디서 왔는지, 머나먼 지평선 너머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정신세계에는 누가 거주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공통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관계망 속에 묶어줌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던바 2015: 284)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존 나일스(John D. Niles)는 인간만이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야기꾼 인간’을 지칭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신조어를 창안했다(Niles 2010).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나랜스가 되는 변이는 생물학적 종으로서 인류(人類)가 인간(人間)이라는 사회적 존재로 진화함을 뜻한다. 슬기로운 생각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상호주관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지향하는 이야기를 하는 ‘호모 나랜스’로 전환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존재 양태가 규정되는 인간(人間)이 탄생했다. 인간은 누가 같은 우리이고 우리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집단 정체성의 기준을 이야기에 의거해서 규정하는 유일한 생물이다. 허구로 만들고 변형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집단 정체성을 결정하는 코드가 됐을 때 선천적인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집단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큰 협력공동체를 결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 ‘이야기꾼 인간’과 역사 서사

  인류가 생물학적 유전자로 구별되는 하드웨어적 측면의 정체성 규정이라면, 인간은 사람들 간에 맺는 결속의 사회성으로 구축되는 소프트웨어에 근거를 둔 정체성 표현이다. 예컨대 우리는 모든 사람, 곧 인류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특정 인간 집단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 이런 인간의 특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적으로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만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다른 개체와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선한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이성 능력이 있기 때문에 폴리스라는 정치공동체를 창조했으며 거기서 개체로서 존재 의미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아리스토텔레스 2009).

  폴리스란 사물처럼 실제로 있는 실체가 아니라 신화나 종교와 같은 이야기에 근거를 둔 ‘상상의 공동체’다. 가장 유명한 폴리스인 아테네(Athenae)는 아테네 여신을 수호신으로 하여 성립한 시민들의 전사 공동체다. 이런 전사 공동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개체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에 대해 답을 주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을 담은 서사가 필요하다. 아테네의 경우 그 서사는 공화국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였고, 그것이 페르시아전쟁에서 페르시아제국에 승리한 요인이 되었다.

  이런 집단기억을 탐구해서 『역사(Historiai)』라는 이야기로 쓴 헤로도토스(BC484?∼BC430?)가 서구에서 역사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그는 저술의 의도를 책의 첫 문장에서 명시했다. “할리카르네소스의 헤로도토스는 그의 탐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는 인간들이 이룬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지 않도록 하고, 또 헬라스인들과 이방인(異邦人)들이 보여준 위대하고 놀라운 행적과 특히 그들이 전쟁을 벌인 원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려는 것이다.”(헤로도토스 2016: 59) 그는 그리스인들의 집단기억을 만들 목적으로 페르시아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경과를 탐구하고 조사한 기록을 남겼다.

  생물학적 유전자는 생식을 통해 전달되고 변이된다. 이에 반해 문화유전자의 진화는 집단학습을 통해 이뤄지며, 그런 집단학습의 표상이 역사다. 역사란 인류가 과거를 현재의 필요에 맞춰 재사용할 목적으로 발명한 서사다. 그래서 괴테는 “지난 3000년의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라고 말했다(크르즈나릭 2018: 12).

  동물도 과거의 경험을 뇌 속의 기억으로 저장하는 정보처리를 나름대로 하며, 행동을 변화시키는 학습을 한다. 하지만 이런 학습은 개체의 차원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인간만이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언어와 문자로 정보화하여 집단기억으로 전환하여 공동의 지적 자산으로 활용함으로써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나 역사의 진보를 이룩했다. 인간에게 역사는 현재가 과거의 결과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이해하고 새로운 미래를 싹트게 할 수 있는 씨앗을 현재에 뿌리는 능력을 배양하는 집단학습의 전형이다. 이처럼 인간이 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학습하고 세대를 넘어 정보를 축적하는 역사적 존재, 곧 호모 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라는 자각이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 위에서 괴테가 강조한 역사의 중요성이다.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인간에게 ‘생의 교사’로서 유용했다. 역사가 가진 힘의 원천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사실만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에 역사가 과학의 한 분과로 정립될 수 있는 요건이 되었다. 이런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역사가가 레오폴트 폰 랑케다. 그는 역사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그것이 본래 어떠했는가를 단지 보여주는 것(bloss zeigen,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고 정의했다(von Ranke 1874: vii). 이 정의에 따라 흔히 역사학에서 진리는 과거 사실과 일치하는 역사 이야기를 쓰는 것을 뜻하며, 이런 역사학 모델을 실증사학이라 부른다.

  실증사학의 진리 대응설에 입각하면 역사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과거를 기록을 통해 복사해 놓을 목적으로 만든 서사로 정의된다. 이런 실증사학의 역사 개념에 대해 물을 수 있다. 인류는 살아온 과거를 단순히 알 목적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살아야 하는 미래를 위해 과거의 사건을 탐구 조사하는 역사라는 서사를 만들었는가?

  이 물음을 가장 심각하게 제기한 사상가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다. 그는 본래부터 있었고 변화하지 않는 것만을 정의할 수 있고 변화하는 것은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가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방식으로 역사를 쓸 수 없다. 인간은 정의할 수 없는 것도 이야기는 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서사로 역사를 썼다. 문제는 모든 이야기는 주관적이고 부분적인 진실만을 말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보다는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와 같은 성찰을 통해 역사에서 진리란 무엇인지 답을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전자의 질문이 과학으로서 역사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후자는 삶으로서 역사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함축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니체는 물었다. “삶이 인식과 과학을 지배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식이 삶을 지배해야 하는가? 양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결정적인 힘이 있는가?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삶이 더 높고 지배적인 힘이다. 왜냐하면 삶을 파기하는 인식은 그 자신을 함께 파기하기 때문이다. 인식은 삶을 전제로 하고, 따라서 모든 지식은 그것의 계속적인 실존, 곧 삶의 유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과학은 더 높은 감독과 감시, 곧 삶의 건강론(Gesundheitslehre)을 요청한다.”(Nietzsche 1972: 327)

  니체의 ‘삶으로서 역사’에 관한 테제는 역사란 사실에 관한 이야기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증사학을 해체하는 폭탄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진실은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가보다는 허구를 창작하는 시인이 더 잘 이야기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논증했다.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곧 개연성이나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아니면 산문을 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헤로도토스의 작품은 운문으로 고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율이 있든 없든 그것은 역시 일종의 역사임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006: 63)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의 판단 기준은 실제 일어난 사실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얼마만큼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라고 했다. 역사에서 똑같은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역사의 정답은 없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해답만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과거 사실은 신도 바꿀 수 없는 객관적 실재인 반면, 역사는 역사가가 서술하여 만든 텍스트이다. 역사가는 과거 실재를 박제로 제작하는 작업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변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부활시키는 창조 행위로 역사를 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과거가 있다. 그런데 그 과거 또한 고정된 시점에 불변하는 것으로 있지 않고 ‘현재의 과거화’를 통해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

  예컨대 100년 전 한국사의 과거와 오늘날 한국사의 과거가 같은가? 지금부터 100년 전은 일제강점기다. 그때의 한국사는 조선사의 과거로 재구성됐다. 그 후 100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수많은 일이 계속 벌어졌기에 그때 조선사의 과거와 지금 한국사의 과거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역사를 다시 쓰는 이유는 역사가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과거 자체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사를 연구해서 쓴다는 것은 결국 오늘의 한국을 만든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칭한다. 이야기로서 한국사는 고정된 실체로서 과거를 복제해 내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인식론적인 후진을 해서 현재의 기원들을 역추적해서 재현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이뤄진다. 존재론적으로는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라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인식론적으로는 역으로 현재를 출발점으로 해서 과거가 재구성된다. 결국 과거란 흘러가는 현재와 조응해서 ‘되는 것(becoming)’이기에 그것 역시 역사라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기억으로 복원될 수 있는 관념적 실재, 곧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역사 서사의 기능, 백미러와 내비게이션

  인터넷으로 가상현실을 연 디지털 시대는 사실과 허구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듦으로써 ‘탈진실(Post-truth)’의 문제를 야기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실·진실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게 사회에서 더 잘 통하는 현상을 뜻하는 ‘포스트트루스’를 선정했다. 이 신조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후기 진실’이나 ‘후(後)진실’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탈(脫)진실’로 쓰인다. 진짜와 가짜의 이분법이 아니라 진실과 ‘탈진실’이라는 새로운 구분법이 생겨난 역사적 맥락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30년대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2017)에서 통찰한 원본이 가진 아우라의 종말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 현실 세계에까지 도래한 것을 뜻한다. 디지털 기술은 복제의 복제를 무한대로 반복할 수 있는 가상현실을 창조하여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경향성을 낳음으로써 원본과 모사 사이의 진리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렸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원본은 없고 단지 그에 대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포스트모던 상황을 시뮬라크르(simulacre) 시대로 규정했다(보드리야르 2001).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모방물이 아니라 원본이 없는 자립적인 이미지이며,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초실재(hyperrealiy)를 만들어낸다.

  4차 산업혁명으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연결하는 초연결사회로 나아감으로써 책, 화폐, 시장 등 많은 것이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한다. 오랫동안 아날로그 세계에 살아온 인류는 실재하는 것만이 진짜고 상상한 것은 그것을 모사한 가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탈진실’은 아날로그 시대의 문법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위기의 증후군이다. 위기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것처럼 낡은 질서는 이미 무너졌는데 새로운 질서는 아직 성립하지 못한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질서로 현재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다시 말해 ‘탈진실’의 담론이 등장한 디지털 시대의 문제를 아날로그 시대의 문법에 의거해서 해결책을 구하려는 노력은 헛수고다.

  이런 맥락에서 유발 하라리는 ‘탈진실’에 대해 두려워하기에 앞서 그것의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청했다.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種)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 데서 나온다. 석기시대 이래 줄곧 자기 강화형 신화는 인간 집단을 하나로 묶는 데 기여해 왔다. 실로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을 정복한 것도 무엇보다 허구를 만들고 퍼뜨리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이방인들과도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허구의 이야기를 발명하고 사방으로 전파해서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까지 그 이야기를 믿도록 납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일한 허구를 믿는 한, 우리는 다 같이 동일한 법을 지키게 되고, 그럼으로써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하라리 2018: 350)

  허구는 가짜가 아니라 꿈이고 인간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다. 그렇기에 허구 서사가 사실을 왜곡한다고 해서 상상력을 억압하는 것은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버리는 꼴이다. 인간은 과거에서 온 메시지는 귀중하게 취급하고 기꺼이 배우고자 하지만 미래에서 송신되는 신호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역사학을 통해 배우는 교훈으로 소중하게 여기지만 후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허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가운데 무엇이 삶을 위해 중요한가? 예컨대 이대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지구 역사의 6번째 대멸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사람들은 크게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Žižek)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면 우리가 ‘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 보편적 해방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적 관점으로 진실을 재구성하는 거라 했다.[2] 디지털 시대 인류는 17세기 비코(Giovanni Battista Vico)가 말한 “진리는 만들어진 것(verum ipsum factum)”임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지제크가 말하는 보편적 해방을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무한대로 허용해야 한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허공에서 줄타기만큼 위험하지만 기억에 관한 한 이미 인류를 초월한 인공지능에 대항해서 인간성을 보존하고 존재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란 점이 문제다.

  지금 우리는 과거가 더 이상 현재의 거울이 될 수 없는 표준이 끊임없이 변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산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데이터, 곧 더 많은 역사 지식을 가지면 가질수록 미래에 새 역사는 더 많이 창조될 것이고, 그만큼 역사 지식은 낡은 것으로 폐기된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학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역사는 과거의 발자국을 참조해서 미래의 나아갈 길을 찾게 해 주는 삶의 지도로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하는 21세기 인류에게 과거의 사례를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 삶의 지도가 무슨 쓸모가 있는가? 과거의 성공이 실패의 아버지가 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기억의 반대는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기억을 통해서 내가 아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이다. 역사란 인류가 과거에 가본 길에 대한 기억이다. 이에 비해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을 그리는 상상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미지의 길을 생각으로 미리 가보려는 시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가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백미러(back mirror)로 뒤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미래를 대처할 수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 역사적 상상력을 최대한 확대할 수 있는 역사의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훨씬 더 유용하다. 아날로그인 지도와는 달리 디지털인 내비게이션은 내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아 목적지를 향해 최적화된 길을 가르쳐준다.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백미러와 내비게이션을 둘 다 잘 봐야 하는 것처럼, 21세기 역사학은 확정된 과거의 재현과 더불어 불확정적인 미래에 대해 전망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과거는 신도 바꿀 수 없는 사실들의 세계지만, 인간은 과거의 ‘지나간 미래’를 ‘반사실적 역사(counterfactual history)’를 통해 발굴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 근대 역사학은 과거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 모델을 지향했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미래의 변화 가능성은 더욱더 커진다는 역사 지식의 역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학은 과거를 재현하는 사실과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 시뮬레이션을 위한 서사로 변신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학인가 아닌가는 단지 역사학자의 고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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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던바, 로빈 (김학영 역), 2015,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 서울: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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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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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totem

  • [1]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totem

  • [2]

    슬라보이 지제크, 『한겨레신문』 2018. 9. 28일자.

저자 소개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일 빌레펠트(Bielefeld)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역사와 과학을 융합하는 빅히스토리를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