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포퓰리즘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한국의 포퓰리즘?
1.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포퓰리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후퇴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 총리,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대통령 등 지역도, 정치체제도, 경제발전 수준도 다르지만 민주주의 후퇴가 우려되는 국가의 지도자들을 포퓰리스트 지도자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다(송승호·김남규 2023).
그러나 포퓰리즘에 대한 대중과 연구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이 과연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포퓰리즘은 때로는 이념으로, 때로는 정치적 양식으로, 때로는 전략으로 정의된다(Weyland 2001). 또한 포퓰리즘은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이념이라기보다는 다른 이념들과 쉽게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연성이념(thin ideology)적인 성격을 갖는다(Stanley 2008). 경제적 불평등, 노동자와 서민의 권리 등을 강조하는 좌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복지확대와 재분배 강화, 그리고 때로는 반자본주의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이들과, 사회의 전통적 가치 및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우파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이민을 제한하고 자국 우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이 모두 포퓰리즘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일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포퓰리즘을 정의하려는 최근의 시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포퓰리즘을 모두 아우르려 하기보다는 포퓰리즘을 구성하는 핵심 필요조건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최소주의적 접근을 택한다. 특히 뮈데(Mudde 2004)의 정의가 대표적이다. 뮈데는 포퓰리즘을, 사회는 결국 ‘순수한 인민(pure people)’과 ‘부패한 엘리트(corrupt elite)’라는 두 개의 동질적이고 서로에게 적대적인 두 집단으로 구성되며, 정치란 결국 인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를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정의한다.
사회를 ‘순수한 인민(pure people)’과 ‘부패한 엘리트(corrupt elite)’의 대립으로 바라볼 때, 포퓰리즘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체화된다. 첫째,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정치는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때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엘리트의 책무는 인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여,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이기적인 엘리트와 기득권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활용한다. 엘리트 중심의 대의민주주의가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이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엘리트와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가 갖는 한계를 반영한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엘리트를 통해 인민의 선호를 정책과정에 반영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국민이 직접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둘째, 포퓰리즘은 종종 사회운동과 친화성을 갖는다. 포퓰리스트 지도자 또는 정당은 정부의 정책, 기존의 정치 엘리트나 시스템에 반대하거나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고자 하는데, 이는 사회운동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손병권 2024). 그러나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정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사회운동과 구별된다. 또한 포퓰리즘은 종종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혹은 스트롱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강력하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신을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로 내세우곤 한다. 엘리트 중심의 제도, 특히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여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셋째, 포퓰리즘은 종종 다원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양상으로 표출된다. 포퓰리즘은 인민을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한다. 인민의 동질성은 인민의 선호가 일반의지로서의 절대성을 가지고, 나아가 이들의 선호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인민의 동질성과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는 소수의 존재는 일반의지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부패한 엘리트가 인민의 일반의지를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위협이라면, 동질성을 위협하는 소수의 존재는 내부의 적인 셈이다. 그 결과 포퓰리즘은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 다원주의와 충돌한다(송승호·김남규 2023).
2. 현실의 포퓰리즘
이러한 포퓰리즘의 특징들은 고전적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사례인 1890년대 미국 인민당 운동뿐 아니라,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이탈리아의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미국의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와 같은 포퓰리즘의 현대적인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인민당 운동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농업부문에서 큰 변화에 직면해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급락했고, 농부들은 과도한 부채와 높은 운송비, 은행의 고금리 대출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중서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농민동맹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불만을 가진 농민들을 조직하여 철도회사, 대형 은행, 대기업 등 대규모 자본가에 맞서 농부들과 소규모 생산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했다. 또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직접선거, 국민발안제 등은 대중의 정치참여를 증진하고, 부패한 엘리트를 견제하려는 상향식 대중운동이었다. 그러나 인민당 운동을 현대적 의미의 좌우 이념과 연관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정병기 2020).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2014년 정치학 교수 출신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창당한 포퓰리스트 정당이다. 포데모스의 기원은 2011년 스페인에서 일어난 ‘15M 운동’ 또는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은 높은 실업률과 긴축 정책의 시행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제 상황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2011년 5월 15일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다.[1]
이들은 기존 정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포데모스 창당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 포데모스는 사회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활용하여 대중의 참여를 극대화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정책 제안을 받고, 당원들의 직접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포데모스는 사회운동을 통해 제기된 요구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사회운동과는 차별화된다. 포데모스는 주택문제 해결, 노동자 권리 강화,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 확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좌파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볼 수 있다.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M5S)은 2009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포퓰리스트 정당이다. 코미디언 출신인 베페 그릴로(Beppe Grillo)와 웹 개발자인 잔로베르토 카살레지오(Gianroberto Casaleggio)가 시작하였다. 이탈리아 정치권의 빈번한 부패 스캔들과 잦은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엘리트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경제적으로도 오랫동안 높은 부채, 저성장 등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청년 실업률이 급등하는 등 경제적 불만도 고조되었다. 오성운동은 엘리트와 기존 시스템을 비판하고,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여 대중이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당명에 나타난 오성은 정당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반영하며, 공공수자원 보호,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 접근과 디지털화, 재생가능 에너지를 의미한다. 오성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기본소득의 도입, 환경보호 등 좌파포퓰리즘적인 요소와 함께 반이민 정책, 반EU 정책 등 우파적인 요소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
2015년 6월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에서 시작한 MAGA 운동은 우파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출마선언에서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마약 거래자, 범죄자, 강간범 등으로 몰아붙이는 등 반이민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MAGA 운동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경제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을 민주당 행정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자유무역에서 찾았다. 또한 일상적인 정치적 교착, 로비세력과 금권정치, 그리고 이들의 선거자금에 의존하는 기성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미국인들은 기존의 정치가 평범한 미국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트럼프는 직설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며 워싱턴 정가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했다.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 아래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미국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웠다. 또한 당시 비유럽계 이민자의 증가에 따른 유럽과 백인 중심의 미국적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에게 반이민 정서를 강하게 부추겼다. 그의 반이민적인 태도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계획이나 무슬림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와 같은 극단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이민적 성향은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보인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세력에 대해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은 오히려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손병권 2024).
3. 포퓰리즘은 왜 확산되고 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이면에서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혹은 대처하지 않고 있는 기존 체제, 그리고 이를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는 정당과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있다(Berman 2021).
지난 세기를 거치며 자본과 소득의 불평등은 유례없는 속도로 심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경제적 불평등은 통계조사국이 추적을 시작한 이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그 결과 상위 1%가 소유한 부의 규모가 나머지 미국 중산층 전부가 소유한 양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계층 이동성의 감소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서열을 뒤집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러한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더 암울한 미래의 전망은 갖지 못한 이들의 좌절과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게 되었다.
암울한 경제 상황이 초래한 분노는 때때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나 반이민 정서와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한 반감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함께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상품, 노동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민주주의 국가일수록 더 많은 외국인과 이민자가 유입되었으며, 그 결과 사회 내의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엘리트들은 다문화주의 정책, 제도적 통합, 반차별 법안 제정 등을 통해 이민자들을 사회에 포용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종종 대중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이민자와 외국인의 유입에 따른 다양성의 증가는 일부 계층에게 전통적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과 같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일수록 외국인과 이민자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취업난이 가중되고, 제한된 사회보장 혜택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출한다. 엘리트들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이들에게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자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희생시켜 이익을 얻는 엘리트와 기득권, 그리고 이민자와 소수자를 지목한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단순화하고, 기존 체제를 바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성정당이 제시하는 복잡하고 점진적인 접근 대신, 이민 제한이나 다문화주의 정책 폐지와 같은 단순하고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배타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소수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들이 추진하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인민’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프레임화하며, 자신들만이 인민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다양성 증가로 인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으며,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정치적 지지로 전환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4. 포퓰리즘과 정치적 양극화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5~7개에 불과하다(Miller 1956). 인간은 이러한 인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하는데, 범주화(categorization)도 그중 하나다. 다양한 정보와 자극을 개별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범주로 나누어 조직하는 것이다. 인간은 범주화를 통해 정보 처리에 소요되는 인지적 부담을 감소시키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범주화는 단순히 물리적 대상뿐 아니라 사회적 집단을 구분하는 데도 적용된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내집단, ingroup)의 특성을 반영하여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한다. 내집단에 대한 긍정적 차별화는 인간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소속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내집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할수록 자기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과 자존감도 높아진다. 따라서 인간은 내집단이 다른 집단(외집단, outgroup)과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기를, 그리고 다른 집단에 비해 우월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는 외집단에 대한 배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포퓰리즘이 기반을 두고 있는 엘리트와 인민의 이분법적 구도는 사회심리학에서 제시하는 내집단편애와 외집단배척의 메커니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대중 혹은 일반 국민을 내집단으로, 내집단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외집단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우리(내집단)’는 항상 도덕적이고 순수한 존재로 묘사하는 반면 ‘그들(외집단)’은 부패하거나 이기적이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으로 비난함으로써 내집단편애와 외집단배척의 메커니즘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도덕적인 우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안은 부패하고 타락한 그들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우리가 불만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우리의 일반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정당하다는 수사로 이어진다.
포퓰리스트는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우리와 그들이라는 단순화된 정체성으로 재구성하고,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명확한 구도를 제공한다. 우리가 옳다는 믿음, 따라서 부패한 엘리트나, 우리의 순수성을 해치는 외국인이나 이민자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믿음은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우리의 규범과 역할을 쉽게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수 있게 한다. 우리를 위해서라면, 이민자와 외국인의 시민적 자유, 선거의 공정성, 견제와 균형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을 훼손하는 것도 정당화된다. 외집단이 가하는 위협이 클수록 순수한 우리에 대한 소속감과 집단 내부의 결속은 공고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위기를 강조하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사람들이 현 상황에 대해 분노할수록, 외집단에 두려움을 느낄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의 결속력이 강해지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종종 극단적인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정치 엘리트와의 경쟁에서 자신을 차별화한다. 기성 정치가 점진적이거나 절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과 달리, 포퓰리스트들은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자신들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을 범죄자나 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에 대해 극단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정당화한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선한 우리와 악한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와 그들의 타협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적이며, 그들을 제거해야 우리의 순수함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에게 타협은 부패하고 무능한 엘리트의 전유물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은 더 강한 이념적, 정서적 양극화 성향을 띠게 된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영향력은 포퓰리즘의 지지자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포퓰리즘에 의해 ‘적’으로 규정된 이들 역시 포퓰리스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포퓰리스트의 비판에 대응한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을 선동가로 규정하고,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그 추종세력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퓰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반포퓰리스트들 역시 자신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포퓰리스트들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한다. 포퓰리스트들이 기존 질서, 엘리트,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해 가하는 비판과 위협이 커지면 커질수록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이들 역시 더욱 극단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결국 포퓰리스트 진영과 반포퓰리스트 진영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전체 사회 내의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된다(Davis et al. 2024).
5. 한국의 포퓰리즘?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 속에서 한국에서도 포퓰리즘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에서 흔히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논의한 포퓰리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8월을 기준으로 포퓰리즘을 검색해보면,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지방재정’, ‘감세포퓰리즘’, ‘기본사회’와 같은 키워드들이 눈에 띈다. 즉,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정당이나 엘리트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선심성 공약과 정책을 남발하는 정치형태를 의미하는 대중영합주의, 포퓰러리즘(popularism)에 가깝다(도묘연 2020; 정병기 2020).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인민의 대결구도 속에서 인민의 일반의지 실현이 목적인 포퓰리즘은 존재하는가?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포퓰리즘을 확산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포퓰리즘으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가?
최근 한국 사회의 포퓰리즘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할 만큼 충분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국 언론과 정치권이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행태가 학계에서 정의하는 포퓰리즘과는 구별되는 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치에서 포퓰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체로 대의제 내부의 엘리트들이다. 포데모스를 이끌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오성운동을 이끌던 베페 그릴로와 잔로베르토 카살레지오, 그리고 MAGA 운동의 시초가 된 도널드 트럼프처럼 대의제 밖에서 대의제의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한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이 포퓰리즘적이라 비판받는 이유가 되는 정책들을 살펴보아도, 반엘리트주의적이거나 대의제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이미 기성 정치권의 일원이며, 사회운동과 거리가 있다.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것은 아마도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고,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2] 그러나 일반 국민의 이념적, 정서적 양극화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여론에서 이념적 양극화의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정서적 양극화의 측면에서도 선거국면이나 탄핵과 같은 주요 정치적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정서적 양극화가 일시적으로 심화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의 정서적 양극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이 대체로 당파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석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강우창·이준호 2024).
2016년의 촛불시위, 2017년의 탄핵정국과 대선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 자신의 내집단 정당을 ‘선’으로, 외집단 정당을 ‘악’으로 규정하는 제로섬적 대결 구도가 확산되고 있으며 정치적 경쟁 상대를 적폐로, 그리고 청산의 대상으로 호명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행정부의 시행령 정치, 정치의 사법화, 반대당 괴롭히기 등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 역시 포퓰리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원인이다(권혁용 2023).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이러한 변화를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등장하고 유권자 사이에서 포퓰리즘적인 태도가 확산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상황을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실제 해결책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직면한 정치적 양극화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는 포퓰리즘보다는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와 팬덤 정치의 활성화에 따른 정당의 포획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한국 정치의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이러한 구체적인 제도적 문제점을 식별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포퓰리즘으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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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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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용, 2023,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 『한국정치학회보』 57(1): 33–58.
도묘연, 2020, “한국 포퓰리즘의 변화 추이와 영향 요인: 경제적 및 정치적 위기의 관점,” 『평화연구』 봄호: 241-285.
손병권, 2024, 『티파티 운동과 위대한 미국운동』,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송승호·김남규, 2023, “한국인의 정치적·경제적 불만과 포퓰리즘 태도,” 『한국정치학회보』 57(1): 59-84.
정병기, 2020, “포퓰리즘의 개념과 유형 및 역사적 변화: 고전 포퓰리즘에서 포스트포퓰리즘까지,” 『한국정치학회보』 54(1): 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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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5M 운동’이라는 명칭은 시위가 발생한 5월 15일에서 유래했다.
- [2]
그러나 일반 국민의 이념적, 정서적 양극화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여론에서 이념적 양극화의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정서적 양극화의 측면에서도 선거국면이나 탄핵과 같은 주요 정치적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정서적 양극화가 일시적으로 심화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의 정서적 양극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이 대체로 당파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석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강우창·이준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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