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소셜 미디어 및 대중심리와 포퓰리즘
1. 사람들은 왜 포퓰리즘에 열광하는가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는 것이다. 댓글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댓글부대」에도 포퓰리즘을 정의하는 듯한 대사가 나온다. “대중의 심리를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 그게 세상을 바꾸는 거거든.” 이 대사가 의미하는 것은 말 그대로 ‘대중 심리’를 ‘이용’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 또는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대중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따라서 당장 대중에게 인기 있는 처방을 내려 환심을 사려고 한다. 문제는 그 처방이 단기적으로는 좋아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다면 문제가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가짜’ 마음을 얻으려 시도할 때 문제가 커지게 된다. 특히 정치인과 기업은 대중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야 살아남는 대상이다. 그래서 유권자와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심지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를 실현하려 행동하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인정 욕구’가 있어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수록 더 기뻐하며 자존감도 높아진다. 포퓰리즘은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되기에, 정치나 소비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현재 가장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대표적인 비교 대상인 소셜 미디어의 팔로워 수를 인위적으로라도 늘리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즉,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다른 사람들과 거의 자동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실시간으로 비교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심리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대중의 힘, 군중의 힘에 의존하는 현상은 특히 익명일 때 더 과격해진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알지 못하면 험한 언어도 더욱 부담 없이 표현한다. 익명 상태에서는 비개인화로 인해 개인의 책임이 더욱 옅어지기 때문이다(나은영·차유리 2012). 소셜 미디어의 가짜 계정들도 어느 정도는 익명성을 지니고 있어, 여과 없이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호의적인 여론 형성을 위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노력은 바람직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가짜 계정을 이용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사회 질서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피해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유사하다. 미디어의 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빛의 속도로 이루어져 오면서 그 부작용도 나라를 막론하고 그에 못지않은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포퓰리즘과 소셜 미디어가 만나 사람들이 미처 그 부작용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그 부작용 안에 개개인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성찰은 줄고 당장의 즐거움에 몰입하게 하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사람의 뇌를 팝콘브레인으로 만들면서 점점 더 숏폼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 이러다가 인류 전체가 소셜 미디어로 연결되어 깊은 생각 없이 포퓰리즘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2. 소셜 미디어는 포퓰리즘을 어떻게 확산시키는가
1) 타인의 의견 지각에 착시를 초래할 수 있는 미디어
미디어는 타인의 의견 지각에 도움을 주지만, 잘못 지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의견이거나 다수의 의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 자주 보이면 대표적 또는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한 예로, 실제로는 한국에 중도성향자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중도성향자는 온라인에 적극적인 의견 표현을 하기보다 이른바 ‘눈팅,’ 즉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훑어보면서 판단만 할 뿐 찬반 의견을 잘 내세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진보 및 보수 성향이 뚜렷한 사람은 중도성향자보다 의견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기 때문에, 또는 대립 진영에 뒤지지 않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온라인상에 의견을 작성한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상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에 중도 의견은 별로 없고 진보와 보수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이것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우리는 미디어에 과다하게 표현되는 내용과 과소하게 표현되는 내용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온라인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보다 친구와 수다 떠는 상황처럼 익숙하게 생각하는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층이 온라인상 의사 표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포털이든 소셜 미디어든 온라인에 올라오는 의견에는 대부분 젊은 층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으며, 노년층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기자들 중에도 발품을 팔아 구석진 곳을 직접 방문해 기사를 작성하기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될 만한 자료를 찾아 작성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온라인상의 의견이 실제 세상 속의 의견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집단 토론에서 처음에는 의견이 7:3로 나뉘었는데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 있게 더 많은 의견을 개진하고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의견을 덜 개진하게 되어 나중에는 이 집단의 의견이 8:2인 것처럼 보이고, 끝내는 소수 의견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하는 ‘침묵의 나선’ 이론(Noelle-Neumann 1974)이 적용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더욱이 모두와 연결된 소셜 미디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도록 되어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설득 원리 중 사회적 증거(social evidence)의 원리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보다 ‘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그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차선을 지키지 않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면 오히려 차선을 지키지 않는 것이 대세라 생각해 차선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다들 차선을 잘 지키고 있는데 차 한 대만 차선을 지키지 않는 사진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나도 잘 지켜야겠네’ 하며 차선을 지키려는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행동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 의견이나 행동의 지각에 착시가 작용하면 그렇게 잘못 지각한 타인의 의견이나 행동에 동조하게 되어 현실의 진짜 의견이 점점 더 왜곡된다. 지금은 듀크대학교 총장인 프라이스 교수가 스탠퍼드대학교에 있을 때 실시한 실험 중 하나에서는(Price 1989), 커리큘럼에 대해 ‘인문계 학생과 자연계 학생 사이의 갈등’을 강조한 신문기사가 단순히 ‘학생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언급한 기사에 비해 인문계-자연계 학생들 간 의견 양극화를 더 키운다는 결과를 발견하였다. 갈등을 강조하면 인문계 학생은 실제 인문계 학생들의 생각보다 더 인문계다운 생각을 본인의 규범으로 생각해 그쪽으로 동조하고, 반대로 자연계 학생은 실제 자연계 학생들의 생각보다 더 자연계다운 생각을 본인의 규범으로 생각해 그쪽으로 동조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두 집단 간에 의견의 양극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자기편만 바라보는 포퓰리즘으로 인한 의견 양극화
그렇다면 의견 양극화는 포퓰리즘과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위에 언급한 사례에서처럼 ‘자기편’의 의견에 편승해 그들의 의견을 과도하게 수용하는 것은 ‘지지층만 바라보는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 의견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는 세 가지의 사회심리학 이론이 있다. 첫째, 설득주장이론(Burnstein and Vinokur 1977)에서는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토론을 하다 보면 그 의견을 지지할 만한 근거들을 더 많이 알게 되어 해당 의견이 더욱 강화된다고 본다. 둘째, 사회비교이론(Levinger and Schneider 1969)에서는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토론할 때 그 의견을 더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리더처럼 보여 그쪽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해당 의견이 더욱 강화된다고 본다.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포퓰리즘 또는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더욱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 현상에 바로 이 이론이 잘 적용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정체감 이론(Tajfel and Turner 1986)에서는 선거나 스포츠 대결 상황처럼 집단정체감(group identity)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대립하는 두 집단이 토론할 때는 실제 자기 집단의 규범보다 훨씬 극단적인 쪽을 자기 집단의 규범이라고 생각해 그쪽으로 동조가 일어남으로써 두 당사자 모두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의견을 갖게 되는 의견 양극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위에 언급한 스탠퍼드대학교의 실험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제로 우리는 선거 과정에서 더 과격한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과정을 여러 번 보아 왔다. 이렇게 되면 반대쪽과의 대화와 토론에는 무관심해진다. 다수를 확보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으니, 전략적으로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언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페이스북에서 정치지도자가 무례한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이 온라인 참여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그 글이 눈에 더 잘 띄게 하는 노출가능성(visibility)을 높였다. 이어 이러한 글로 인해 유발된 감정적 흥분이 페이스북 사용자들 사이에서 더욱 적대적이고 무례한 행동을 더 많이 보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해, 댓글과 온라인 토론의 위험도를 높였다(Rega and Marchetti 2021). 강한 언어의 효과가 더해지면 이는 애초의 사회심리학적 의견 극화 현상을 더 악화시킨다. 언어 사용과 화법으로 인한 의견 극화는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는 것으로, 심지어 리더는 전략적으로 무례하고 강한 언어 사용을 활용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 비슷한 극단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나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 상대 집단의 리더는 특히 더 극단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 강원택(2024)의 최근 연구에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념적 거리를 측정한 결과, <그림 1>과 같이 민주당 지지자는 본인보다 국민의힘이, 국민의힘 지지자는 본인보다 민주당이 더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같은 당 내에서는 지지자들보다 정당이, 정당보다 리더가 더 극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고자 할 때, 실제로 무엇을 믿느냐보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고,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들은 극단적이지 않지만 동일한 방향의 더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리더의 역할을 맡기고 싶어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포퓰리즘이 ‘지지층을 향해’ 발생하는 경향을 서로 대립하는 두 정당 모두에 적용해보면, 지금 전 세계에서 소셜 미디어로 말미암아 더욱 악화하는 의견 양극화의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선거 이외의 영역에서도 의견 극화와 소셜 미디어로 인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의 한 사례로서(『조선일보』 2024. 8. 5일자), 영국의 여자 어린이 세 명을 숨지게 한 범인이 이슬람 이민자라는 거짓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서 급속히 퍼지며 폭력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들 수 있다. 실제 범인은 기독교 국가인 르완다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영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시작된 가짜 뉴스는 급속도로 펴졌고 과격 행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극우 단체가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이런 경우 또 이 단체에 반대하는 집단이 반대 시위를 벌이게 되어, 의견 양극화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그 기사가 인용했듯이,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대로 “이번 사태는 거짓 정보와 극단주의가 만나 폭력으로 번진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3) 팬덤 파워로 변질된 리더십
소셜 미디어의 핵심은 연결된 사람들의 수와 관계의 강도다. 특히 ‘좋아요’의 마력은 포퓰리즘을 더욱 악화시킨다.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몇 명이 ‘좋아요’를 눌렀는지 확인하느라 다른 일에 집중할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수록 ‘좋아요’를 더 많이 받게 되고 그만큼 팬덤의 규모가 커지는 구조다. 지인이 아니더라도 연결이 또 연결을 불러와 동질적인 사람들이 끼리끼리 뭉치기에 매우 적합한 구조의 플랫폼이다.
팬덤이 형성되면 그 한 사람 또는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 피리를 부는 대로 따라가기가 더 쉬워진다. ‘동조’의 심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온라인에 의견을 더 많이 올릴수록 다수로 보이기 때문에, 마치 인기투표처럼 너도나도 댓글을 작성하며 충성 맹세를 한다. 그러면 그 팬덤의 주인은 동질적인 추앙자들에게 둘러싸여 그것이 바로 현실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면서 다른 현실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A라는 사람의 팬덤이 되는 순간 그를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반대쪽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반대 의견들을 많이 표출하는데, 대중이 상대편을 많이 ‘싫어하게’ 만드는 수단으로도 소셜 미디어와 댓글이 활용되고 있다.
권력에는 여섯 가지의 심리적 바탕이 있다. 보상 권력, 처벌 권력, 참조(호감) 권력, 전문성 권력, 정보성 권력, 합법성 권력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상을 줄 수 있거나, 처벌을 내릴 수 있거나, 호감을 줄 수 있거나, 전문성·정보성·합법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러한 권력으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권력 기반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뿌리를 둔 ‘사람들의 진짜 마음’ 얻기가 진짜 권력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진 요즘에는 실제 권력 기반이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여론을 조작하기도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도 점점 더 실제 모습보다 ‘보이는’ 것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4) 끼리끼리의 동질적 의견을 강화하는 소셜 미디어
현재의 미디어 상황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라고 할 수 있다(Wellman 2000). 많은 사람과 항상 연결되어 있으나 정작 속마음을 터놓을 사람은 드문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어떤 이슈를 중심으로 모일 때는 비록 원래부터 알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견’이 같다는 이유로 하나가 된다. 어떤 한 가지가 유사하면 다른 것들도 본인과 유사하리라고 쉽게 가정하며 뭉친다. 미디어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때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가정된 유사성(assumed similarity)’의 심리, 즉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믿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Cronbach 1955). 미디어가 이를 더 악화시키는 형국이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의 힘 모으기, 마음 모으기가 아주 쉬운 플랫폼이다(나은영 2012). 특히 서로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좋아요’를 누르거나 동조 댓글을 달면서 끈끈한 집합체가 되기도 한다. 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며 그것이 ‘여론(public opinion)’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동질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내에서 타인의 의견을 지각하게 되는 현재의 소셜 미디어 상황에서는 본인과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착각을 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질적인 의견을 접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동질적인 의견을 과도하게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연구자들(Muller et al. 2017)은 베를린, 파리, 런던, 취리히에 거주하는 2,338명을 대상으로 포퓰리즘과 의견 극화 간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뉴스로 전달되는 포퓰리스트 아이디어가 대중의 지지와 포퓰리즘 불인정 간 의견 극화를 더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포퓰리즘이 ‘선한’ 동질적 시민들과 ‘악한’ 정치적 엘리트 간의 적대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는 관점(Albertazzi and McDonnell 2008), 그리고 최근 들어 미디어가 포퓰리즘에 끼치는 영향을 포함한 “미디어 포퓰리즘”(Kramer 2014)의 연장선상에서 포퓰리즘적 이슈들(예: ‘정치인들은 사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보통 사람들과 이른바 엘리트 간의 차이는 보통 사람들 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 등)에 관해 2014년 4월과 2015년 3월, 2회에 걸쳐 온라인 서베이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 약간의 지역 차이는 있었으나 포퓰리즘적 이슈를 뉴스에서 많이 접한 사람들 중에서 처음에 포퓰리즘적 태도가 강하던 사람들의 경우 그 태도가 훨씬 더 강화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 효과는 파리 표본에서 가장 강했고 런던 표본에서는 약했다. 취리히 샘플에서도 최초의 태도가 포퓰리즘 쪽이면 포퓰리즘 뉴스를 접한 후 더 강한 포퓰리즘 쪽으로, 최초의 태도가 반포퓰리즘 쪽이면 뉴스를 접한 후 더 강한 반포퓰리즘 쪽으로 극화되었다. 대체로 포퓰리스트 메시지가 정치체계 전반에 이미 구축되어 있을수록 포퓰리스트 메시지의 설득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미디어의 작용이 적었던 예전에 비해 미디어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진 현재로 올수록 동조심리나 군중심리가 미디어의 영향으로 증폭되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동질적 집단끼리의 쏠림과 연합 현상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여론 지각에 왜곡을 초래하고,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를 타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5) 진짜와 가짜의 혼동
예전의 저널리즘에서는 ‘사실’ 또는 ‘진실’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신문 기사는 당연히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진실을 이야기해도 ‘저것은 과연 사실일까’ 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퍼뜨린 가짜 뉴스로 의심하기도 한다. 이러한 ‘팩트체크’ 과정에서마저 편견과 기존 태도가 작동해, 자신이 원래 지지하던 생각과 일치하면 별도의 검증 없이 바로 사실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은 반면, 엄연한 사실이라도 그것이 자신의 원래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가짜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영화 「댓글부대」에 나오는 대사 중 “완전한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약간의 거짓을 섞으면 훨씬 더 진실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나 상품이 ‘실제로’ 어떠한가보다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다 보니, 비록 진실이 아니라도 더 좋게 ‘보이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하기도 한다.
가짜가 범람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유튜브를 비롯한 현재의 온라인 미디어 시스템에서는 ‘조회 수’가 수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일단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소식을 전해야 하는 ‘속도 경쟁’을 하게 되고, 제목부터 시작해 키워드들이 자극적이어야 사람들이 클릭을 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포퓰리즘이나 가짜 뉴스와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영역이 된 것이다(Burkeman 2019).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만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되어, 어떻게 해서든, 즉 과격한 언어를 쓰든 충격적인 가짜 뉴스를 전달하든,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려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노이즈 마케팅’처럼 밋밋하게 살아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보다 나쁜 짓이라도 해서 ‘잘 알려진’ 사람이 선거에 당선될 확률이 더 높다고 하겠는가.
3. 처방은 있는 것일까
상황이 이러할진대 우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할까? 처방은 과연 있는 것일까? 상황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의 욕구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잘 억제되지 않는다. 그래도 세 가지 정도의 처방을 생각한다면, 첫째는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교육, 둘째는 건전한 상식과 윤리가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보상 시스템의 점검, 셋째는 소셜 미디어 기업의 알고리즘 개선을 들 수 있다.
먼저,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는 늘 미디어에 둘러싸여 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와 노인은 물론 성인에게도 전반적인 미디어교육이 필요하다. 미디어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참과 거짓을 제대로 구분해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자기가 원래 좋아하는 정보들만 탐닉하기보다는 다양한 정보들을 골고루 찾아보며 크로스체크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내가 사용하는 미디어는 기계이지만, 그 너머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쓴 날카로운 댓글이 사람의 마음을 진짜 찌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다음,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떡하면 보상을 받는가,’ 즉 ‘어떻게 해야 내 욕구가 충족되는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인에게 보상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언행을 하게 된다. 만약 강력하지만 통합을 저해하는 ‘갈라치기’ 언행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는다면, 즉 상대를 날카로운 언어로 공격하는 행위가 보상을 받는다면 그러한 행위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언어가 보상을 받지 않도록, 즉 강렬하고 자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도 그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주의집중을 자극하는 언어보다는 온화하고 인간적인 언어에 기울임으로써 배제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속도가 늦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세상이 되어야 인류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비록 소셜 미디어 기업의 이익에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인류 전체를 위해 사람을 현혹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에 천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손해를 감수할 소셜 미디어 기업이 있을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이렇게 미디어교육으로 ‘사람’의 변화를, 알고리즘 점검으로 ‘기업’의 변화를, 보상 시스템으로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그나마 양극화로 피폐해져 가는 인류 사회를 화합의 장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라 하겠다. 온전하지 않더라도 바른길로 가도록 노력을 해보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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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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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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