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충(蟲)’이 넘쳐나는 사회: 자기 파괴의 징후로서 언어 변화

36호 - 2024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최호근

  지난 겨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방문했다. 밤늦게 찾은 호텔에서 자다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이불을 들춰보니 여러 마리의 빈대가 있었다. 허겁지겁 짐을 챙긴 후 로비로 가서 환불을 약속받고 역으로 달려갔다. 워낙 놀란 탓에 빈에 더 머물 생각이 없었다. 물린 부위가 가라앉는 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고, 대중교통을 탈 때도 신경이 곤두섰다. 몇 달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빈대믹’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뱀에 대한 내 공포감도 탐방로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산을 멀리할 정도로 병적이다. 내가 이토록 벌레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뱀과 마주친 체험과 함께 사회적 학습을 통해 내면화된 이형(異形)의 무리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1. 홀로코스트의 씨앗: 유대인의 이형화

  나치 집권과 지배는 어느 날 갑자기 외부세계에서 들이닥친 재난이 아니었다. 나치 범죄의 대명사인 홀로코스트 역시 돌발 사건이 아니라 지난 수백 년간 유럽 땅에서 이루어진 퇴행적 진화의 산물이었다. 이 장구한 과정의 시작점에 유대인을 별난 무리로 단정하는 집단적 분위기가 있었다. 이 비우호적 분위기의 한 단면이 편견이다.

  편견은 타인을 비하하는 관점이자 그 소산이다. 편견은 종종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Haslam and Loughnan 2012). 비인간화(dehumanization)가 반드시 개인이나 집단의 파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끔찍한 수준의 대량학살에는 언제나 비인간화 과정이 선행한다. 아메리카에서 백인 정착민들의 원주민 살해가 본격화되기 전에도 이들을 ‘이’로 묘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어린이들은 ‘서캐’로 묘사되었다. ‘서캐’가 자라 ‘이’가 된다는 자연 관찰의 경험은 어린이에 대한 살인으로 이어졌다. 원주민 여성들은 (백인) 인간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을 잉태하는 숙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학살이 주저 없이 자행되었다(최호근 2005).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단정하는 것보다 더 비인간적인 일은 없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비인간화의 사례로 차고 넘친다. 이 경향은 근대에 와서 심화되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여파로 발생한 폭력적 분쟁 속에서 대량학살이 발생할 때마다 표적이 된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중 후투족이 투치족을 살해할 때, ‘바퀴벌레 같은 투치’라는 수사가 널리 활용되었다. 그것도 민간에서 음습하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공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투치족 바퀴벌레들을 소탕하자”는 내용이 거듭 송출되었다. 그 결과 투치족 공동체는 와해 수준으로 궤멸되었다.

  제노사이드 범죄의 전형인 홀로코스트도 비하와 조롱의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나치 시기의 매스미디어에서 유대인은 독버섯과 뱀, 쥐와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 독거미와 기생충의 이미지로 표상되었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나 지구를 거대한 발로 휘감는 초대형 문어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비하는 유대인을 유아 살해자, 악마 숭배자로 간주하는 중세적 편견의 토양에서 쉽게 확산되었다. 이 부정적 이미지는 유대인이 ‘예수를 살해한 무리’라고 선언한 신약성서까지 소급된다.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고 유대인들의 집을 파괴하라고 선동한 15세기 팸플릿의 저자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였다는 사실도 이 연속성 속에서 이해된다(Luther 1543). 전갈과 수전노의 이미지는 20세기에 와서 매부리코에 등까지 굽은 모사꾼, 탐욕에 살찐 자본가와 투기적 은행가로 구체화되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오랫동안 형성된 유대교에 대한 반감(Anti-Judaism)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나치의 반유대주의는 몇 가지 점에서 이전과 구별되는 질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첫째, 나치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자연의 일부처럼 되어버린(naturalized) 유대인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이데올로기적 동기에서 체계적으로 재조직했다. 둘째, 나치 국가는 인종학을 전면에 내세우며 분산적 수준에 머물렀던 유대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통합한 후 그 위에 공적 직인을 찍었다. 1935년 뉘른베르크에서 통과된 「인종법(Rassengesetze)」은 그 정점이었다. 인종 구분은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의 정당화를 넘어 향후 시행될 배제와 축출 조치의 기반을 다지는 법률적 작업이었다. 이 점에서 1935년 9월의 「인종법」은 1941년 7월에 공식화된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Endlösung)의 명시성 암시였다. 셋째, 나치는 언어의 연금술을 통해 유대인 집단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나치 집권 후 유대인이 ‘인간 이하의 존재’에서 ‘죽어 마땅한 존재’로, 여기에서 다시 죽은 존재로 바뀌는 데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 매트릭스의 변화: 언어의 변질과 집단학살

  나치의 집권과 더불어 독일 사회는 급속도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유대인과 집시(신티와 로마[1]), 동성애자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 대한 체계적 파괴가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수의 독일 국민은 자신들도 나치 지배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볼 때, 이 변명은 강변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히틀러와 나치당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독일 국민은 1932년 말 총선에서 자기 선택에 따라 나치당에 합법적으로 권력을 위임했다.

  독일인은 왜 이렇게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을까? 개인 차원에서는 타인에 대한 간섭과 침해를 극도로 꺼리는 예의 바른 독일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집단범죄의 집행자와 방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큰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단서가 히틀러 등장 전후에 일어난 언어 세계의 변질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머스 쿤(Thomas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2013)에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동도 결국은 언어의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지배적인 과학적 사유와 이론 체계에 대한 도전은 새로운 개념들의 출현과 확장으로 수행된다. 지배적 담론을 구성했던 세계관, 이론, 방법과 직결된 개념들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도전적인 대항 개념들이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에 패러다임의 교체가 완수된다는 것이다. 쿤의 설명은 자연과학은 물론 권력세계와 일상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Reill 1975).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상징되는 독일 민주주의의 몰락은 나치당의 집권과 더불어 시작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약화와 계몽의 유산을 조소하는 분위기가 나치당의 집권과 민주주의 붕괴를 초래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주권, 평등, 인간의 존엄성, 보편적인 시민권,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게 줄고 이 개념들의 부식마저 심해지면서 독일의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잃어갔다. 혈연을 강조하는 인종적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기념물 조성에서 그리스 조각의 전형인 월계수 문양이 독일의 숲을 상징하는 떡갈나무 잎으로 전면 교체될 때, 이미 순수한 원민족(Volk) 공동체를 역설하는 나치당의 권력 장악이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지불식중에 진행되는 조류의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한 동시대 독일인이 언어학자 빅토어 클렘퍼러(Victor Klemperer, 1881-1960)였다. 

  유대인인 클렘퍼러는 자기 시대 상황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전후에 출판된 대표작 『제3제국의 언어(Lingua Tertii Imperii)』(1947)에서 나치가 어떻게 독일어를 통해 독일인의 사고와 행동을 조종해갔는지 세밀하게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초기의 박해는 의미를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교묘한 차별로 시작되었다. 유대인은 공원 벤치에 앉지 못했고, ‘아리안족’과 같은 수영장에 출입할 수 없었으며, 애완 고양이도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인 가정부가 일을 그만두었다. 아리안족이 유대인을 섬길 수 없다는 조치 때문이었다. 클렘퍼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인정받아 다른 유대인과 달리 교수직을 좀 더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었고, 학과의 주요 결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되었다. ‘아리안족’ 출신의 아내 덕분에 강제 이송과 학살은 면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청소부 일을 시작해야 했다. 나치 당원과 히틀러 유겐트 대원들로부터 받는 모욕과 구타는 일상의 일부였다.

  나날의 체험을 반추하면서 클렘퍼러는 변질된 시대의 시작을 언어세계라는 미묘한 지점에서 찾았다. 그는 나치 집권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이 쓰는 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새로운 슬로건의 등장은 누구나 지각할 수 있었지만, 의미 있는 모든 표현이 꼭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상의 언어도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주의 깊은 관찰을 바탕으로 이 새로운 언어들이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 훨씬 전부터 독일 사회를 갉아먹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히틀러와 힘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고위 정치인과 관료들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독일인들은 물론 동료 유대인들까지 그의 관찰 범위에 포함되었다. 이들 모두가 동시대인으로서 같은 호수의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언어와 상징체계, 개인적 지각과 사회적 소통 방식의 변화는 나치의 기획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단선적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중의 호응이 필수적이었다. 나치는 국민의 기대나 용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내용과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를 주조했다. 나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능자가 아니었다. 이미 전통과 사회 내에 뿌리박은 소재들을 가지고, 집단적 기억에서 호소할 수 있는 감성적 방식으로 대중에게 메시지를 발신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엄청난 인명 희생, 전선에서는 이겼지만 후방의 모리배들 때문에 패전했다는 식의 ‘등에 칼 맞은 신화(Dolchstoßlegende)’, 막대한 전쟁배상 책임과 프랑스군의 루르 공업지대 점령, 들끓는 민족주의 감정,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이질감, 초유의 인플레이션과 실업을 동반한 세계 대공황, 자본주의와 근대 물질문명에 대한 환멸감, 파괴되어가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鄕愁). 이 모든 현실은 개념과 수사의 다중 필터를 통해 표현되어야 했다. 동일한 현실이 부정적 혹은 긍정적 방식으로 그려질지, 회고적 혹은 전망적 시각에서 묘사될지, 배타적 혹은 포용적 자세로 수용될지는 동시대인들 간의 침묵의 합의 속에서 결정될 일이었다. 클렘퍼러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마솥 안의 물고기와 같은 처지에서 현재진행형의 언어적 변화를 일기에 기록했다. 

  클렘퍼러는 시대의 담론과 일상에 영향을 주는 특이한 언어 구성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나치 언어의 대부분이 새로 창안되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단어를 차용해서 그 의미를 변형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Wegner 2004).

  이 시기 언어의 첫 번째 특징은 특정 단어들의 반복적 사용과 강조였다. ‘본능(Instinkt)’과 ‘자발적(spontan)’ 같은 표현이 감각적 반응과 절대적 복종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의 유행을 조장했다면, ‘종특(Artfremd)’ 같은 낯선 표현은 소수집단에 대한 경계와 차별 정서를 강화했다. 특이하게도 ‘광신적(fanatisch)’, ‘광신주의(Fanatismus)’ 같은 표현이 절대적 몰입과 동조, 열정적 호응과 충성을 뜻하는 매우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해하지 말고 믿어라’가 시대의 표어였다. 총통은 맹목적 충성의 대상이었다. 물음표는 용인되지 않고 느낌표만 권장되었다. 나치 시기 전체에 걸쳐 궁리와 사유, 대화와 설득의 언어는 사라졌다. 그 대신 무조건적 복종을 강조하는 선동의 언어, 회당의 언어가 지식인들의 숨통을 죄어갔다.

  두 번째 특징은 완곡어법의 광범위한 활용이다. 장애인에 대한 반인도적 안락사 작전은 ‘배려성 돌봄(betreuen)’으로, 유대인을 포함한 소수집단에 대한 비인간적 강제이송은 ‘소개(疏開: Evakuierung)’로, 일제 검거와 체포는 ‘인수활동(holen)’으로, 본래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게 표현되었다. 반인도적 고문 행위는 ‘강화된 조사활동(verschärfte Vernehmung)’으로, 소수 집단 구성원들에 대한 살인은 ‘특별대우(Sonderbehandlung)’로 표기되었다. 이러한 기만적 언어 때문에 연합국 수뇌부와 유대인 지도자들은 홀로코스트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상황을 오판했다. 의도적 이중어법(Doublespeak)은 독일군의 패배를 위기(Krise)로 표현하도록 강제했던 보도지침에서도 확인된다(아렌트 2006). 

  셋째, 동일한 표현이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예를 들어, 대중매체 속에 ‘영원한 독일(das ewige Deutschland)’과 ‘영원한 유대인(der ewige Jude)’이 동시에 등장했다. 형용사 ‘영원한’은 각각 숭고함과 비열함을 함축하면서, 인종 집단의 자연결정성과 운명적 모순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영원한 유대인」은 본래 중세부터 전해져 내려온 ‘방랑하는 유대인’을 모티프로 1940년에 제작된 나치의 선동영화로서, 음험한 유대인 이미지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참을 수 없는 증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이 제3제국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증오’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독일 국민도 유대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를 명시적으로 표현해야만 했다. 전자가 공격적이고 음모적이라면, 후자는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표현 역시 유대인과 아리안족의 양립 불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배제, 고립, 절멸을 정당화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넷째, ‘위대한(Groß)’, 민족(Volk), 세계(Welt) 같은 접두사의 광범위한 활용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민중의 의미까지 담고 있는 고유의 독일어 Volk는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라는 조합어를 통해 무수하게 강조되었다. 19세기 말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Ferdinand Tönnies, 1855-1936)의 정의를 변용한 개념인 민족공동체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표상하는 이익공동체(Gesellschaft)와 달리 인종적으로 순수하며 분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국민의 공동체를 의미했다. 누구나 탈 수 있는 국민차(Volkswagen)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독일 관념론 철학의 난해한 개념인 세계관(Weltanschauung)도 저잣거리의 용어가 되어버렸다. 나치는 ‘숭고한 이상에 기초한 세계관’을 통해 독일이 처한 지정학적 문제를 침략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다. 독일 지식인들의 제1차 세계대전 선전 팸플릿에 등장했던 ‘세계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Hirschfeld 2004). 

  마지막 특징은 신조어의 광범위한 사용이다. ‘온 세상을 아리안족의 방식으로 개조한다(arisieren)’거나 ‘북유럽의 기준으로 전 세계를 바꾼다(aufnorden)’는 북유럽에서 기원한 아리안족의 인종적 우수성을 공격적으로 표명한 신조 동사였다. 이보다 심한 동사 ‘탈유대화하다(entjuden)’는 독일과 유럽,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절멸 의지의 노골적 표현이었다. 나치가 목표로 한 아리안화는 곧 유대인 없는 세상이었다(Aly 2005). 이에 대한 사후 대응으로 연합국은 독일 점령 후 탈나치화(Entnazifizierung) 정책을 시행했다. 「인종법」이 통과된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주요 전범의 국제재판을 진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시대의 유행어가 ‘하급인간(Untermenschentum)’, 즉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유대인으로서 시대의 박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존을 목표로 삼았던 클렘퍼러에게는 나치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유행어의 확대재생산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관찰하고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뿐이었다.

3. ‘충’의 범람: 위험사회로 향하는 신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출간된 클렘퍼러의 일기 세 권과 『제3제국의 언어』는 영미권에 번역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일상 언어를 통해 자기 시대의 퇴행적 변화를 읽어내는 그의 방식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뉴미디어의 범람이 문제되는 우리 시대 환경에 대한 우려와 연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후인 2021년에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워싱턴 의회폭동 사건은 미국인들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언어 변화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혐오발언(hate speech)에 관한 과거의 연구가 소수 (인종)집단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줄이기 위해 이루어졌다면, 최근의 관심은 미국 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진단과 연계된다. 영문학 교수인 마틴 푸크너(Martin Puchner)는 “언어의 미묘한 변화가 어떻게 미국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나?”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과 과거 나치 지배 사이의 오버랩 현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Los Angeles Times 2021. 1. 23일자).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다시 나선 트럼프는 최근에 지지자들 앞에서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언급은 그의 생각이 단순한 실언이 아님을 입증한다. 부정적 가치판단을 수반하는 단어 ‘오염’을 인간-자연의 관계가 아닌 인간 집단 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방식은 나치의 범죄적 과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운데 절반이 조국으로 택한 미국 땅에서 이루어진 대선 주자의 이 발언은 “독일인의 피가 유대인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는 히틀러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히틀러 2023). 이처럼 자극적인 발언이 반복되면 점차 정상적인 것처럼 수용되고 권장되는 관행이 생겨날 수 있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이 현상만으로 파시즘이나 국가주의로의 회귀를 염려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현재의 미국은 나치가 지배하던 과거의 독일과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미국의 공적 영역에서는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법률적 개념이나 공세적 선동을 위한 ‘딱딱한 명사들’의 활용 사례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왜 미국 지식인들은 사회의 오염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경보를 울리고 있는 것일까? 부정적 가치판단을 함축한 일반 명사, 자긍과 타혐(他嫌)의 정서를 유발하는 형용사와 부사, 본래는 병균·곤충·짐승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한 것을 이형화된 소수 집단을 비하하기 위해 전용한 동사들이 한데 뒤섞여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성 용법은 법적 규제의 철조망을 물이나 공기처럼 자유자재로 통과하면서, 한 사회의 분위기를 극우화해서 마침내 구성원들의 정치적 선택까지 바꿀 수 있다.

  변성된 언어와 오용된 표현을 본래의 의미로 되살리는 일은 오염된 생태계를 되살리는 것만큼 어렵다. 비문자 언어도 마찬가지다. 탈나치화 과정을 통해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나치의 슬로건과 로고, 몸동작과 상징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폭동 당시 출현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백인 우월주의 손동작, 최상급 표현과 느낌표의 남용, 게다가 전체 내용이 대문자로 작성된 트럼프의 트윗은 긴 호흡에서 사태를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서늘한 기시감을 갖게 만든다. ‘한 번 일어났던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재와의 연관 속에서 부담스러운 과거사를 다시 숙고해야 하는 이유다(Salon 2023. 12. 11일자). 

  복기(復棋)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볼 때, 독일 국민은 거대 범죄의 가해자가 되지 않을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 1932년 말의 총선이 첫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치당을 제1당으로 선택했다. 두 번째 기회는 1935년이었다.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을 예고하는 「인종법」이 뉘른베르크에서 통과될 때 독일인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파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유대인들이 공직에서 축출될 때도 그들은 그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즉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상식을 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는 1939년 장애인들에 대한 안락사 프로그램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대상자 대부분이 독일인이었음에도 우생학 교리와 효용 중심의 인간관에 압도된 부모들과 친지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었다. 정치인 히틀러를 괴물로 만든 것은 독일인이었다. 물론 독일인이 히틀러에 동조할 이유는 많았다. 독일인 특유의 질서에 대한 강박,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에 대한 반감, 경제적 안정과 복지에 대한 염원, 내부의 소수 집단에 대한 거부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과잉 공포가 주요 동기였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이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일상 언어의 변화는 독일 국민이 나치즘에 포섭되어 갔던 과정의 흔적이자 증인이다. 스탄 노이만(Stan Neumann) 감독이 클렘퍼러의 책 『제3제국의 언어』를 바탕으로 2003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필름의 제목처럼, ‘언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Language Does Not Lie).’

  언어는 무기다. 계몽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언어는 특권과 인습에 맞서 보편적 가치들을 발신하는 소중한 도구였다. 긴 시각에서 보면, 펜으로 상징된 언어는 칼보다 강했다. 하지만 때로는 언어가 칼이 되기도 한다. 르완다 내전 때 많은 사람이 날카로운 마체테(Machete)로 살해되었다. 비하의 언어가 정글의 풀을 베는 칼을 살인용으로 전환시켰다. 음습하게 퍼져 있던 ‘바퀴벌레 같은 투치’ 표현이 국영 라디오를 통해 반복해서 발신되면서 투치족에 대한 대대적 살해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인간 비극의 ‘시초에는 말이 있었다.’

  언어는 인간의 지각과 인지, 사고와 행위를 지배한다. 노다 마사아키의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2000)에 등장하는 일본군 731부대 출신의 군의관은 중국인 수감자를 생체 실험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전혀 없다고 증언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중국인은 돼지’라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비하의 언어는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 일상화,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내면화 과정을 거쳐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난징 학살 역시 중국인을 바라보던 과거 일본인들의 시선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군국주의 일본의 인종관보다 심한 것이 나치 독일의 세계관과 인간관이었다. 나치는 유럽인을 네 등급으로 구분했다. 최상위 지배민족에는 아리안족과 깊이 연관되었다고 믿는 북유럽인과 독일인이 포함되었다. 다음 등급은 ‘문화를 이해할 줄 아는’ 서유럽인이었다. 동유럽인은 그 밑의 노예민족이었다. 유대인은 피라미드의 가장 밑에 있는 인간 이하의 존재(Untermenschen)로 간주되었다. 더 심각한 사실은 나치가 유대인을 단순히 무용한 존재가 아닌 해로운 존재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고대와 중세에 악마 숭배자, 근대 초기에 (노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기생충으로 형상화되었던 유대인 이형화 과정은 나치시기에 와서 바퀴벌레, 쥐, 뱀 같은 해충과 해수로 완결되었다. 이것으로 공생의 여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박멸의 심성만 남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사용된 치클론 B가 해군 군함과 잠수함의 골칫거리였던 바퀴벌레 퇴치를 위해 제조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치클론 A를 인마살상용으로 전용한 것이 치클론 B였다.

  언제부턴가 조롱과 비하의 표현으로서 ‘충’ 자가 접미사로 우리 사회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한국일보』 2015. 8. 19일자). 한때의 유행으로 낙관하기에는 그 여파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대상이 다양화되는 데다, 화용의 맥락과 배경도 우려스럽다. ‘무뇌충’, ‘진지충’, ‘설명충’, ‘토익충’ 같은 복합어는 맥락 속에서 용인할 수 있는 은어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지균충’과 ‘기균충’, ‘맘충’, ‘틀딱충’은 심각하다. 대상으로 지칭된 사람이 느끼게 될 굴욕감을 쉽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균형 발전과 기회 균등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선발된 동료를 성적이라는 단일 기준에 따라 공동체에서 배제하려는 청년들의 심성은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맘충’과 ‘틀딱충’은 참으로 악의적인 표현이다. 젠더와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켜 신뢰와 연대, 배려와 존중의 사회적 자산을 고갈시킨다. 출신 학교와 지역, 성적 지향과 연령, 종교적 신조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심성의 소유자들이 민족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지개 사회’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이 존중받는 캐나다를 칭송한다. 하지만 온갖 ‘충’(의 표현)이 넘쳐나는 호수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충’만 문제는 아니다. 넘쳐나는 ‘○○충’은 타인을 이형화하는 집단적 경향의 돌출 사례에 불과하다. ‘(불법)이민자들이 우글거린다(infest)’,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피를 오염시킨다(poison)’, ‘유대인들이 민족의 몸을 더럽히고 있다’처럼 동물이나 벌레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동사로 사람의 행동을 비하하는 것도 악의적이다(『NEWS1』 2018. 7. 20일자). 제식훈련 때 군 교관으로부터 무수히 들은 ‘꿈틀거리지 마!’라는 표현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암적 존재’ 같은 비유도 결코 타인이나 집단을 가리켜 사용해서는 안 될 표현이다.

  나치 시기 독일과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든 현재의 미국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들이 더 있다. 독재의 언어, 집단주의의 언어, 선동의 언어가 우리 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단하기 위해서다. 정치인은 물론 지지자들의 언어에서 부정적 단정의 언어, 느낌표, 최상급 표현이 남용되고 있는지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열린사회에서는 최상급 대신에 겸양의 표현을 선호하고, 느낌표 대신에 사려 깊은 질문을 중시한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해법을 제시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파시즘 시대에는 하향식 선동과 기획된 상징정치가 결정적이었지만, 중심이 분산된 다원화 사회에서는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언어의 정치에서도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냉철한 사고보다 과열된 논쟁을 선호하는 소셜미디어를 플랫폼 삼아 나직이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굴절된 언어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타자를 이형화하는 혐오 조장 표현은 우리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키고, 차별을 정상적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다시 정책과 일상 속에서 배제와 억압의 경향을 강화하고, 벌레로 비하된 집단에 대한 폭력까지 정당화하기 쉽다. 이렇게 해서 누적된 적대감과 불신은, 구 유고 내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파괴와 인명 희생으로 이어진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 확산에 대한 대응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법제적 규제와 처벌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뉴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진 탈집중적 미디어 환경에서는 실효성도 제한적이다. 이보다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부문에서 언어를 통한 탈인간화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과 대안적 표현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과 역사기념시설들 사이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개별 역사 사건에 치중해온 박물관과 기념관 전시·교육도 변화하는 사회적 수요에 맞게 다양한 국내외 사건 사례들을 활용하여, 문제 지향적으로 개편하기를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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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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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 마사아키(서혜영 역), 2000,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서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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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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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트럼프 "이민자들 우글거린다"…벌레취급 논란”(박승희), 2018. 7. 20일자. (2024. 2. 26. 접속)

    Los Angeles Times, “How Subtle Changes in Language Helped Erode U.S. Democracy — and Mirrored the Nazi Era”(Martin Puchner), 2021. 1. 23일자.

    Salon, “Jason Stanley on 'Undermining Propaganda' with Fascism”(Chauncey Devega), 2023. 12. 11일자.

  • [1]
    독일 연방 대통령 슈타인마이어(Steinmeier)는 2022년 2월 독일의 신티족과 로마족에게 과거 나치의 범죄를 사과했다. 우리가 보통 집시로 알고 있는 20만 명의 신티족과 로마족은 전통적으로 유랑민이었지만 오늘날은 소수의 신티족만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다. 19세기 후반에 남동부 유럽에서 중부 유럽으로 이주한 로마 가문의 후손이어서 '로마'인으로도 불리는데, 이 표현이 적절하다. 이 소수 민족은 나치의 대학살로 유럽에서 50만 명 그리고 독일에서 2만 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그 사실 자체가 은폐되고 부인되었다. 이에 대한 보상 청구를 했지만 인정되지 않자 그들은 자신들의 학살을 공식 인정받고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랜 세월 투쟁해 왔다.

저자 소개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일 근현대사와 역사이론을 전공하였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영향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트랜스내셔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