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마치며

2024.10.10
대구가톨릭대학교 프란치스코칼리지 명예교수
김운찬

1. 번역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르네상스 문학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완전한 번역본이 없었습니다. 단테나 보카치오의 대표작들이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번역본으로 소개된 것과 비교해 보면 푸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일부 발췌 번역본이 나왔으나 완역본은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이탈리아 문학과 르네상스에 대해 강의하고 연구하는 동안 페트라르카와 『칸초니에레』에 대해 살펴보고 확인해야 할 것들과 자주 부딪혔지요. 특히 단테와 마키아벨리, 아리오스토, 타소 등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면서 그럴 필요성이 많아졌습니다. 작가들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칸초니에레』의 일부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정확한 이해를 위해 번역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산발적으로 번역해 놓은 작품이 점차 많아졌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완역본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제가 체계적으로 번역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번역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페트라르카의 뛰어난 역량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칸초니에레』는 시인 페트라르카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시집이고, 위대한 고전 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매력이 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사랑 노래는 자칫하면 진부하거나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데, 페트라르카는 참신하고 신선한 주제와 기법으로 사랑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시에 담았습니다. 라우라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습니다. 열두 편의 ‘기념일 시’나 세 편의 ‘장갑의 소네트’ 연작시, ‘축복의 소네트’, ‘비난의 소네트’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랑 노래의 변주곡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 소재의 다양성과 거기에 어울리는 뛰어난 표현은 페트라르카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어려웠지만, 그러면서도 번역의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3. 대중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칸초니에레』의 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랑 노래로 읽어도 좋고, 페트라르카의 내적 번민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고백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대부분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라우라에 대한 사랑은 세속적 가치와 즐거움을 상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번민을 털어놓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읽기와 감상의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 노래 외에 다른 주제의 시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도 새로운 분위기와 함께 페트라르카의 내면세계를 엿보게 해줍니다. 그런 다채로운 모습이 『칸초니에레』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4. 번역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나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요?

  『칸초니에레』는 여러 차례의 편집을 거쳐 탄생한 시집이라는 사실입니다. 페트라르카는 거의 40년 동안 틈틈이 쓴 시들을 새롭게 편집하면서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였습니다. 편집할 때마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거나 덧붙이는 과정에서 언어와 문체, 표현을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단일하고 통일적인 언어가 형성되었습니다. 

  나중에 피에트로 벰보 추기경이 이탈리아어 운문의 모델로 『칸초니에레』를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단테가 『신곡』에서 사용한 여과되지 않은 언어와는 달랐습니다. 언어와 표현의 측면에서는 『신곡』보다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맥락에서 『신곡』보다 앞서 인쇄본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페트라르카와 『칸초니에레』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향후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요?

  『칸초니에레』는 전 유럽에 소네트 형식을 유행시킨 작품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창안된 소네트는 주로 사랑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으나 다른 주제를 다루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랑의 감정뿐 아니라 다른 내면세계를 표현하거나 정치, 종교, 철학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천재들이 많이 활동한 시기입니다. 문학과 예술, 정치와 종교, 철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소네트 몇 편 정도는 기본적으로 남겼습니다. 소네트 외에 다른 형식의 시도 즐겼습니다. 

  그런 시 작품들을 실마리로 삼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르네상스인들이 남긴 업적과 영향을 살펴보는 책을 집필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를 통해 르네상스인들의 색다른 모습과 함께 시대상을 살펴보려는 것이지요. 

5.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칸초니에레』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지 않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외국 문학의 수용에서 아직도 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생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문화도 다양성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나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본 연구는 대우재단의 2021년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2024년 9월에 61번째 대우고전총서로 발간되었습니다.

저자 소개

김운찬
대구가톨릭대학교 프란치스코칼리지 명예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지도하에 화두(話頭)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