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마치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숙영

1. 집필의 계기, 혹은 배경은 무엇인가요?

  2007년 독일에서 박사후연수를 할 때, 당시 지도교수셨던 Bernard Comrie의 관계절 유형론에 대한 논문들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유럽어는 관계절과 보어절이 구분되는데, 한국어를 비롯한 아시아의 몇몇 언어들은 관계절과 보어절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절의 분류를 달리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파격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침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한국어에도 관계절과 보어절의 구분은 유효하다는 의견을 건넸지만, 지도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언어유형론의 권위자이시지만 한국어는 잘 알지 못해 나온 분석이겠거니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를 바로잡는 논문을 써 보리라 했었다. 

  수년 후 학교에 자리를 잡고, 한국어의 관계절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어유형론의 논의를 거듭 읽고 한국어의 관형사절과 견줄수록, 기대와는 달리 지도교수의 분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어 관형사절의 일종인 보어절과 비교해서는 드러나지 않던 한국어 관계절의 특수성이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다른 유형의 언어들과 대조하니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관계절뿐만 아니라 동사의 논항 자리에 많이 쓰이는 명사절, 유럽어의 체계에 따르면 부사절로 묶여야 하는 한국어의 종속접속절, 발화동사나 사유동사의 보어로 쓰이는 간접인용절 각각을 모두 언어유형론에 기반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20여 년 전의 필자가 했던 것과 같은 섣부른 판단을 막기 위해서는, 절의 종류에 따른 언어유형론의 논의와 이에 따른 한국어 절의 특성을 최대한 망라하여 하나의 책에 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어유형론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어의 내포절과 접속절의 특징을 모두 담으려 한 최초의 시도인 만큼 부담이 컸지만, 당위성이 있었다.

2. 저자로서 책을 집필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연구 대상이 유례없이 방대한 만큼, 어떤 내용을 추려 어떤 구조로 조직할 것인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관형사절, 명사절, 종속접속절 각각은 서로 독립적으로 기술되면서도 장별 구성은 서로 평행하게 상통하는 것이 있도록 구성해야 했다. 그래서 이들 절을 각각 제2부, 제3부, 제4부로 나누고, 이들을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꾸몄다. 

  그리고 각각의 첫 번째 장에는 절에 따른 언어유형적 쟁점과 성과를 담았고, 두 번째 장은 한국어 문법 안에서의 각 절의 위상과, 다른 언어들과는 다른 특수성을 기술하였으며, 세 번째 장에는 해당 절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관심을 가져왔거나, 향후 한국어 밖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현상들을 모았다. 이로써, 언어유형론의 논의가 궁금한 독자는 첫 번째 장을, 한국어 절의 특성이 궁금한 독자는 두 번째 장을, 한국어 절과 관련한 논의거리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은 세 번째 장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꾀한 것이다. 

  실제 기술과 관련해서는, 언어유형론의 글들은 모두 영어로 쓰여 있어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친절히 풀어 설명하고자 하였다. 언어유형론의 표현이나 술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언어유형적인 접근에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또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연구자나, 모어가 한국어가 아닌 연구자들이 자신의 모어 연구에 활용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3. 이 책에서 다룬 한국어의 절의 종류 외에도, 언어유형론에 기반한 한국어 문법 기술이 어떤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나요?

  언어 연구는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와의 비교에 기반한다. 글의 문면에 대조 방법론을 명시하든 명시하지 않든, 설명에 이용되는 술어나 설명의 대상이 되는 개념은 일반언어학, 유럽어 중심의 언어 기술에 의지한 것들이다. 언어유형론에 기반한 문법 기술은, 그간의 유럽어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훨씬 더 다양한 언어의 사례를 대조군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설명의 우위를 점한다. 

  일례로 그간 한국어 문법서에는 ‘한국어에는 관계대명사가 없다’는 점이 주요 특징으로 제시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관계대명사는 유럽어에 주로 나타나는 것이고 관계대명사를 가지는 언어는 세계 언어의 20%에 못 미친다. 따라서 한국어에 관계대명사가 없다는 기술은 유럽어를 지나치게 우대한 기술이다. 언어유형론에 기반하면 ‘한국어는 관계절을 만드는 데 공백 방책을 쓰는 언어이다’로 바뀐다. 이런 기술의 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4.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논의거리 혹은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목차의 제목을 보고 흥미가 있거나 필요한 부분만 우선 읽어도 된다. 많은 개념어들이 쓰였지만 색인을 따로 달지 않은 것은, 다루는 대상과 범위가 장절 제목에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해당 장이나 절에서 할 수 있는 설명은 다 했고, 책의 다른 부분의 참조가 필요한 경우는 본문에 밝혀 두었다.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논의거리로는 한국어 문법의 정도적 현상을 문법론이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국어학자들은 대부분의 문법 현상이 칼로 무 자르듯 경계 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정한다. 이를테면 파생어와 합성어의 구분도 그러하고, 굴절과 파생의 구분도 그러하다. 쉬운 예로 ‘산뜻이’는 부사이고 ‘산뜻하게’는 부사절인가 하는 문제도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언어 현실과는 달리, 학교 문법을 비롯한 많은 교육 현장에서는 경계짓기가 강요되는 면이 있다. 이제는 실제 문법 현상과 문법론과의 거리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5. 향후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절의 특성을 세계 언어학계에 본격적으로 발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교착어에 대한 기술이 언어유형론 논의에 비중 있게 추가됨으로써, 절 유형론 논의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연구 대상으로는 그간 해 온 범주론 위주의 연구는 일단락하고, 동사와 형용사의 어휘 의미론을 살펴볼 생각이다. 아울러 제주방언을 비롯하여 방언의 문법을 언어유형론의 시각에서 탐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 본 연구는 대우재단의 2019년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2023년 12월에 646번째 대우학술총서로 발간되었습니다.

저자 소개

문숙영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수를 했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를 거쳐,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심 분야는 한국어 문법, 의미화용, 방언문법이며, 특히 언어유형론이나 언어 대조에 기반한 문법 기술에 주된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