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기본 정보
도서 소개
예법에 대한 원숙한 이해와 유연한 적용
정서와 상황을 생각하는 퇴계의 신중함
조선 유학자들은 주자의 『가례』에서 제시하는 규범을 실생활에서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규범이 모든 상황을 일일이 규정할 수는 없었기에, 때로는 변례(變禮)라는 방식으로 예외 상황에 대응해야 했다. 특히 상례와 제례에서는 『가례』의 규범이 당시 조선에서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나 국가에서 제정한 법령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가례』는 신주에 조상의 영혼을 모시고 사당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우선시했지만, 사람들은 조상의 육신이 누워 있는 무덤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또 주자는 사대부들이 고조(高祖)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당시 조선 국법은 일반 사대부들이 증조(曾祖)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원칙과 예외 사이에서 일어나는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해 퇴계는 경전으로 내려오는 고례(古禮), 주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이 만든 예서(禮書)뿐만 아니라,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등 여러 자료를 꼼꼼하고 폭넓게 참조하여 이런 변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퇴계의 답변을 보면 그가 예법의 자구에 갇히지 않고 예법이 만들어진 이유와 예법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를 밝히는 데 힘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예법을 통해 개인의 정서를 충분히 담아 표현하면서도 개인의 삶, 사회적 관계, 자연의 섭리도 해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한다. 즉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치르는 상례와 제례도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의 도리에 맞도록 행해져야 하므로 퇴계는 성현들이 세운 규범이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적 질서를 고려해 관습과 법령을 존중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처럼 퇴계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예학을 충분히 소화하고, 이를 조선의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을 만큼 예학에 대해 원숙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퇴계는 변례를 만들고 적용하는 데 사뭇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과 과거의 실수를 솔직히 고백하고, 자신의 의견도 잘못될 수 있으므로 항상 질문자에게 더 나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직접 판단해 보라고 권한다. 퇴계의 이런 자세는 변례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고 점차 성현의 예법에 맞도록 고쳐야 한다는 그의 예학적 견해와 자신이 예법을 정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는 생각에 입각한 것이지만, 퇴계 본인의 겸손하고 솔직한 성품, 을사사화와 같은 경험을 통해 얻은 퇴계 개인의 상처가 녹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퇴계의 제자가 발췌하고 퇴계 예학의 전문가가 보완하여 번역한
상례와 제례에 관한 447개의 대화
이러한 조심스러움에도 퇴계의 의견은 예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으로 인정받았고, 퇴계 사후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견을 중요한 길잡이로 삼았다. 사람들이 매번 퇴계의 문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글을 일일이 찾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제자 조진이 상례와 제례에 관한 글을 발췌하여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이라는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침서가 되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흩어진 것을 모았다는 점에서는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이 책을 바로 읽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글이 원래 편지였기에 질문자는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묻고 퇴계도 질문자가 상당히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개별 사안에 집중하여 답한다. 그래서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는 읽기 어렵다. 더구나 순서가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질문자에 따라 글이 묶여 있어서 궁금한 문제를 바로 찾을 수도 없다.
옮긴이 한재훈 교수는 퇴계 예학의 전문가로, 오래전부터 『퇴계선생상제례답문』에 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옮긴이는 이 책이 지닌 문제를 보완하기 위하여 충실한 번역과 함께 맥락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주석을 달았다. 또 구별 없이 묶여 있는 내용들을 주제에 따라 447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각각 번호를 매기고, 각 조목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분류한 부록을 실어 이 책의 활용을 더 편리하게 하였다.
사람의 마음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되는 퇴계의 정신
최근 퇴계 종가에서 차례 때 상차림을 소박하게 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형식보다는 의미와 마음을 중요시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퇴계의 정신은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우리는 복잡한 관계망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수시로 도덕적 딜레마를 겪는다. 때로는 규범들이 의미와 맥락을 잃고 너무 형식적으로만 행해진다고 느끼거나, 때로는 질서가 없어 각자 너무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런 문제를 느끼고 갈등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안에 올바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도덕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마흔두 명의 질문자들이 마주한 문제는 제각각이지만,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잃지 않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동기를 담아낼 수 있는 규범을 찾는 문제는 16세기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마음을 성찰하여 삶의 도리를 찾는 퇴계의 정신은 조선 사회보다 더 복잡하고 다변하는 사회에 살며 더 쉽게 아노미에 빠지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목차
초간본
이담에게 답하다·1564
이담에게 답하다·1565
송언신에게 답하다·1570
김태정의 문목에 답하다· 1569
이순의 문목에 답하다·1564
안동부관에게 답하다·1565
김우굉, 김우옹에게 답하다·1566
김우굉, 김우옹에게 답하다·1570
이문규에게 답하다·1567
안동부사 윤복에게 보내다·1566
기대승에게 답하다·1564
기대승에게 답하다·1565
기대승에게 답하다·1567
기대승에게 답하다·1569
이정에게 답하다·1560
이정에게 답하다·1565
이정의 문목에 답하다·1566
조목에게 답하다·1563
정유일에게 답하다·1561
정유일에게 답하다·1564
정유일의 별지에 답하다·1567
정유일에게 답하다·1569
정유일의 별지에 답하다·1570
금응협, 금응훈에게 보내다·1563
김부륜에게 답하다·1553
김부인, 김부신, 김부륜의 문목에 답하다·1555
김부륜에게 답하다·1557
김부륜에게 답하다·1570
김취려에게 답하다·1561
김취려에게 답하다·1565
김취려에게 답하다·1566
우성전에게 답하다·1566
우성전에게 답하다·1567
우성전에게 답하다·1568
우성전에게 답하다·1570
허봉에게 답하다·1570
정곤수에게 답하다·1569
김성일에게 답하다
김성일에게 답하다·1568
김성일에게 답하다·1570
김기에게 답하다·1569
이덕홍에게 답하다·1570
금난수에게 보내다·1561
금난수에게 보내다·1563
류중엄에게 답하다·1569
권호문에게 답하다·1564
이함형에게 답하다·1569
조진에게 답하다·1568
정구에게 답하다
한수에게 답하다·1564
김택룡에게 답하다·1568
조카 녕, 교, 혜에게 답하다
아들 준에게 답하다·1565
종도에게 보내다·1559
권대기에게 답하다
정유일에게 답하다
김부필에게 답하다
정윤희에게 답하다
후지
보본
보본
노수신에게 답하다·1566
해제
옮긴이의 말
부록
부록 1 발췌한 문답과 같은 글이 실려 있는 위치
부록 2 퇴계와 문답을 나눈 인물 소개
부록 3 문답 내용의 주제별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