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기본 정보
도서 소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강조한 서양 사회주의 사상의 고전
서양 사회주의 사상의 고전 『소유란 무엇인가』가 전공학자의 번역에 의해 출간되었다. 사상사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나키즘이 갖는 사상적 극단성과 마르크시즘에 의해 윤색된 평가로 인해 지금까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영원히 〈마이너리티 리포트〉로만 머무를 것 같던 아나키즘이 사회개혁의 설득력 있는 대안 이념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 프루동 사상을 오늘날의 입장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부르주아 소유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
서양사상사에서 아나키즘의 등장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성숙에 따른 〈소유〉와 〈생산〉 사이의 모순의 심화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1840년, 이름 없는 어느 시골 독학생이 쓴 한 권의 책은 프랑스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을 경악시켰는데, 그 책이 바로 아나키즘의 선구자 프루동의 문제작 『소유란 무엇인가』이다.
가진 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자본주의가 한창 만개하고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한복판에서 나타났다. 프루동에게 소유제도는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노동의 결실을 빼앗는 강탈행위일 따름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남의 노동에 기생할 뿐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서 부패와 향락을 일삼았던 부르주아 계급을 강하게 비판한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대안체제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프루동만큼 소유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지는 못했다.
이와 같이 그가 부르주아 소유권에 집중해 연구하면서 가장 투철한 반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남다른 인생 역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가난하며, 가난한 자의 아들이다. 나는 가난한 이들과 일생을 보냈으며 십중팔구는 가난하게 죽을 것이다.〉 프루동의 사상에 가장 깊은 자국을 남긴 것은 그가 성장하면서 줄곧 겪어야 했던 그 자신과 이웃들의 고단한 삶과 이에 따른 고통의 기억이었으며,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은 프루동 자신의 사상을 굳건히 하는 기반이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가난한 자의 대의이다. 가난한 자는 누구든 나와 한가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가난한 계급의 물질적·도덕적·지적 조건을 개선할 수단을 찾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소유란 무엇인가』의 구체적 내용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는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한 그의 최초의 대작이자 서양 사회주의 사상사의 고전이다. 프루동이 〈도둑질〉로 표현한 〈소유〉는 자신의 노동에 의거하지 않는 일체의 기생적 소유, 즉 이자, 이윤, 지대, 소작료 등을 의미한다. 프루동은 당시 소유제의 존재근거를 법적, 심리적, 경제적 논거로 나누어 조목조목 검토하면서 그 어떤 이유에 의해서도 소유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논증하고 있다. 그는 소유제가 사회의 파탄을 가져올 뿐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특유의 논법으로 증명한 후 소유제의 철폐를 부르짖는다.
그는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 집단적 소유를 각각 개인적 원리와 사회적 원리의 양 극단으로 간주하고, 이 양 측면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처분권을 자본가와 지주로부터 빼앗아 사회에 넘겨주면, 사회는 다시 그 생산수단의 용익권을 생산자 개인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며, 각자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노동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를 폭력 혁명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평등과 정의가 구현되는 상부상조의 사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루동의 주장은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정보다는 유통과정의 부당성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찾기에 앞서 이 책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좀더 주목해야 한다. 프루동이 꿈꾼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생산하고 노동하는 상호협동의 사회였다. 그가 조직, 규율, 권위 따위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의지를 그만큼 신뢰한 것은 사실 그가 함께 생활하던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인 동시에 그들이 품은 일반적인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책의 여기 저기에서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더불어 풍요롭고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루동 사상의 현재성
프루동의 사상을 단순히 실현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사상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소유권의 남용을 규제하고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이루어나가려는 서구의 다양한 사회개혁조치들 속에서 프루동 사상의 현재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프루동의 문제작을 당대의 시대상황 속에서 읽어내고 그 현재성을 온전히 평가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비록 프루동이 추구한 자유의 왕국이 영원히 도달하기 힘든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150여 년 전 그가 던진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 소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명명한 인물로, 브장송 아카데미가 고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서 쓴 「소유란 무엇인가」로 하루아침에 '불온'사상가로 이름을 날렸다. 1844년 파리에 머물면서 마르크스, 바쿠닌 등 저명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했으나 「빈곤의 철학」 이후 마르크스와 갈라섰다.1848년 2월 혁명 직후 한때 제헌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으나 곧 기존 질서의 전복을 외치며 노동운동의 선두에 섰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 후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한국서양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유럽 정치사회사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