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기본 정보

지은이
조르주 깡귀엠
옮긴이
여인석
출판사
아카넷
가격
13,000원
발행
2010년 4월 30일
판형
쪽수
196쪽
ISBN
9788957331781

도서 소개

이 책은 깡귀엠 생전에 출판된 마지막 책이다. 과학과 의학의 관계에 주목한, 비슷한 주제의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 발간한 것이다. (깡귀엠이 처음부터 한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저술한 것은 의학박사 학위논문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 철학박사 학위논문인 「17·18세기 반사개념의 형성」의 두 권뿐이다. 나머지 출판된 그의 책들은 모두 발표한 글들을 묶은 것이고, 그의 글들 중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는 글들도 상당하다.)
이 책은 과학사와 인식론의 역할을 다룬 서론, 과학과 의학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적 문제를 다룬 1부, 그리고 앞에 실린 이론적 글들에 대한 예증의 성격이 강한 나머지의 글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주요 테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과학과 의학

오늘날 현대 의학은 묘한 역설에 빠져 있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자기규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분명히 특정한 철학적 입장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철학과는 무관한 학문처럼 생각하는 역설이며, 또한 현대 의학의 발전은 오늘 진리로 여겨지던 사실이 내일은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지극히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늘의 진리를 불변의 진리로 절대화하는 오류에 쉽게 빠져드는 역설이다.
깡귀엠은 이 과학과 의학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고 있다. 그의 사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의학철학 전통을 주목해야 한다. 의학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은 의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의학의 생성과 변천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합할 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깡귀엠이 프랑스 의학철학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 중 하나는 생기론이다. 그에 따르면 생기론은 방법이기보다는 당위적 요청이고, 이론이기보다는 정신적 가치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유기체와 비유기체를 나누는 분할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의학이 인간이라는 지극히 가치 지향적인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한 생기론의 문제는 단순히 ‘프랑스적 전통’에 국한되지 않고 의학철학의 중심적인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의학철학에서 생기론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증주의적 전통이다. 생기론이 방법이기보다는 당위적 요청이고, 이론이기보다는 정신적 가치라고 규정한 깡귀엠의 말을 뒤집으면 실증주의적 전통의 성격이 정확히 드러난다. 다시 말해 실증주의는 당위적 요청이기보다는 방법이고, 정신적 가치라기보다는 이론이다. 프랑스 의학에서 생기론적 전통과 실증주의적 전통은 몽펠리에 학파와 파리 임상학파의 대립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내용과 철학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 깡귀엠의 과학적 이데올로기

깡귀엠이 중요시하는 것은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그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엄밀히 분리해 ‘순수한’ 과학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또 과학을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그는 과학사가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에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의 담론 안에 이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그는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상대 개념으로 깡귀엠이 제시하는 것은 합리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아울러 합리성의 형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생명과학에서의 합리성은 달리 말하면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생명체의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다. 다소 도식적으로 표현한다면 생명과학에서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생명체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외적 규범이고, 그 합리성은 생명체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명과학의 합리성과 의학적 합리성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의학은 생명과학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의학은 궁극적으로 개체가 앓는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생명과학의 다른 분야들과는 구별된다. ‘치료’란 의학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치료의 근거를 어디에서,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치료의 근거를 이론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의학에서 사용되는 치료법들 중에는 어떠한 이론의 매개도 없이 “써보니까 듣더라”는 경험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이처럼 치료가 개인적 경험과 그에 따른 신념에 근거한 경우 그 치료가 합리성에 근거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치료에서의 합리성이란 치료의 근거가 설득력 있는 합리적 이론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치료의 전략이 유기체에 대한 보편적 지식, 즉 해부학이나 생리학에 근거해 짜인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연결 관계를 깡귀엠은 의학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은 근대 서양 의학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달한 해부학 지식을 임상적 지식과 결합시킨 파리 임상의학파, 병리학을 생리학에서 연역하려 한 클로드 베르나르의 기획, 그리고 병원성 세균의 발견과 이를 죽이는 항생제의 개발로 완결되는 병인설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확립된 의학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우리는 깡귀엠을 통해 최근 의학의 발달 양상에서 새로운 의학적 합리성이 형성되는 전조를 본다. 그는 의학적 합리성의 장애물로 보아온 생물학적 개체성을 원인론과 대립시키지 않고 새로운 의학적 합리성에 통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분자생물학과 면역학의 발전에서 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학문의 발전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깡귀엠의 생애 말년에 이루어졌으므로 그는 이 주제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의학철학의 역사에서 깡귀엠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7
서론 11
 
제1부 19세기 과학과 의학의 이데올로기 39

Ⅰ.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39
Ⅱ. 의학적 이데올로기의 예: 브라운의 체계 56
Ⅲ. 세균학이 19세기 말의 의학 이론에 미친 영향 66

제2부 19, 20세기 생물학적 합리성의 성취 95

Ⅰ. 18세기와 19세기 생물학적 조절 개념의 성립 95
Ⅱ. 다윈 이래 생명과학의 역사에 대해 118
Ⅲ. 생물학적 사유의 역사에서 정상성 문제 140

부기 163
참고문헌 166
 
역자 해제: 프랑스 의학철학의 계보와 조르주 깡귀엠 169
역자 후기 191

저자 소개

조르주 깡귀엠
프랑스 철학자, 물리학자

1904년 프랑스 남서부의 소도시 카스텔노다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파리의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1924년 장 폴 사르트르와 레몽 아롱과 동기생으로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등학교 철학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후 의학 공부를 시작했고, 여러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재직했다. 1941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강좌를 맡아 가르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55년 가스통 바슐라르의 후임으로 소르본 대학의 철학교수로 부임하여 프랑스 역사 인식론적 전통을 이어갔다. 1971년까지 소르본 대학에 재직하며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등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는 의학 박사학위 논문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비롯하여 『생명에 대한 인식』, 『17, 18세기 반사개념의 형성』, 『과학사·과학 철학연구』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여인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

1990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생충학으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7대학에서 서양고대의학의 집대성자인 갈레노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인식론·과학사)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 및 의학사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공저), 『의학사상사』, 『한국의학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캉길렘의 의학론』, 『라캉과 정신분석혁명』, 『생명에 대한 인식』(공역), 『히포크라테스 선집』(공역),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 『알렌의 의료보고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