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R H. 토니

기본 정보

지은이
고세훈
옮긴이
출판사
아카넷
가격
26,000원
발행
2019년 10월 28일
판형
161*231*34mm
쪽수
452쪽
ISBN
9788957336465

도서 소개

토니는 독보적이었다. 럭비고교에서 토니를 만나 평생의 우정을 나눴던 템플에게 그는 “도무지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길드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조지 콜의 아내이며 사회주의 이론가였던 마거릿은 “출중한 인격이 저술을 압도하는 사람들 경우처럼 토니의 운명도 점차 스러져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예측은 틀렸다. 물질주의와 계급적 사회체제를 향한 토니의 사자후와 동료애(fellowship) 넘치는 사회에 대한 그의 비전은 영국 진보사상과 정치에 길고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토니의 정신과 학문을 기리는 모임과 강연들이 줄을 잇고 그의 이름으로 학술상이 수여된다. 그의 자취는 여전히 곳곳에서 맑고 향기롭다.

무엇보다 토니는 노동당 정치를 이끌었던 수많은 지식인, 정치인들에게 사상의 원줄기를 댔던 대학자였다. 그는 전간(戰間)시절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역사서인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1926)을 쓴 경제사학자이며, 『탈취사회(The Acquisitive Society)』(1921)와 『평등(Equality)』(1931)을 통해 영국사회주의에 윤리적 사회주의의 활력을 불어넣었던 사상가였다. 토니는 20세기 영국사회주의를 견인했던 학술저작들을 남겼으면서도 노동세계의 제자들에게 지식과 삶의 스승이었고 노동당 정치의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평생을 노동자교육에 헌신하며 역사와 경제학을 가르쳤던 개인교습(tutorial class) 중심의 성인교육 개척자, 완전무상의 중등교육 주창자, 대학개혁가이며, 런던 이스트엔드 빈민지역의 사회활동가였다. 토니는 경제사학자요 정치인이요 교사였지만 무엇보다 도덕가였다. 그에게 정신과 가치와 윤리는 역사의 진보를 위한 토대였거니와, “현대사회는 도덕적 원칙과 이상의 부재로 인해 병들어 있다.”는 진단이야말로 그의 삶과 사상의 출발점이었다. 토니가 공동체적 윤리와 목적의식의 쇠락 내지 실종의 주원인인, 당대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구조를 파헤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적 재조직을 촉구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헌신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토니는 초기 자본주의의 성취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 자유의 통로였던 자본주의는 자기만의 속박을 다시 불러들였으니, 토니는 이를 “산업봉건주의(industrial feudalism)”라 불렀다. 그것은 탈취 본능을 고무하고, 공동체의 활력이 돼야 할 문화를 소유와 과시의 문제로 축소하며, 교회의 묵인과 후원하에 교만과 굴종을 주입하며, 경제력 집중을 통해 전쟁을 부추기고, 정치과정을 왜곡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 토니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인간을 경제체제의 요구에 종속시킴으로써 인류를 목적인 사람과 수단인 사람으로 가르는 “궁극적이고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교육체제와 산업조직이 모두 인간을 도구화하면서, 사람을 목적으로 취급하는 공적 도덕의 원칙은 사회경제적 삶의 기존 조직에 의해 도처에서 조롱당하고 있다. 당연히 가장 본질적이고 시급한 정치적 과제는 공동의 목적이라는 개념을 사회에 복원시켜서, 사회적 삶의 활동과 기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새로운 사회는 합의된 목적과 그에 따른 통합과 응집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윤리의 체계를 지녀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은 공동체의 이익에 종속되고, 정치활동은 물론 산업도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며, 목표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사회의 전 기구와 조직이 평가된다. 필요한 것은 사익을 위한 분파적 자유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위한 기능적 자유이다. 자유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개인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로의) ‘종속’으로서의 자유 또한 중요하다. 요컨대 토니의 궁극적인 관심은 공동의 목적에 뿌리내린 사회적 통합의 달성이었다.

토니는 사상과 삶, 학문과 사회봉사가 늘 함께 가며, 인간과 정치, 개인적 행로와 공적 활동이 엄정한 일관성을 유지하며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치 않으려 했다. 그는 이론과 실천의 접점지대, 원칙과 행동의 중간지대에서 끊임없이 양자를 오가며 그 둘의 변증법적 통합을 구현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개인적 성품과 삶의 구체적 경험 그리고 현실사회와의 끊임없는 실천적 교류 속에서 수행된 그의 학문 활동은 방대한 저술들에서 꽃을 피웠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직과 검소 그리고 절제의 흐트러짐 없는 삶을 살았다. 토니는 기독교에 대해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해 성찰하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자신이 쓰고 말한 바를 구현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생애, 저술, 사상: 연대기적 소묘
 

1 노동계급과의 대면
옥스퍼드와 토인비 홀
노동자 성인교육의 개척자
전쟁과 평화
산업문제 속으로: 생키위원회의 경험

2 사상과 정치의 교호(交互)
3부작, 학문적 성취의 절정
정치적 좌절과 명분 사이에서
전쟁전후의 풍경들: WEA, 메클렌버러 스퀘어, 노동당
“평등의 사도” 떠나다

제2부 토니 사상과 기독교의 위상
 

3 신앙, 윤리, 실천
토니 신앙의 초월성과 현재성
개인윤리와 ‘복음의 정치적 명령’
『비망록』의 의의
사회윤리와 기독교적 전제들

4 페이비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역사주의와 유토피안주의의 거부
“부(富)를 멸시하라!”―페이비언 국가주의 비판
열린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제3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 탈취사회에서 기능사회로
 

5 탈취사회의 잔인한 평화
전쟁, 평시체제의 연장
탈취사회의 탄생
개인의 권리냐 사회적 기능이냐
재산권의 다양성

6 기능사회를 향하여
기능적 자산의 원리
전문업, 기능사회의 산업조직원리
변화의 동력과 가능성

제4부 평등의 논리, 윤리, 전략
 

7 불평등이라는 종교
불평등, 그 “평온한 잔인함”
공동인간성, 공동문화
배려의 평등과 다양성의 사회
기회의 평등이라는 환상

8 평등의 전략―“평등을 선택하라!”
가능한 몇 가지 조치들
교육과 평등사회
『평등』의 공과와 함의

제5부 생각을 멈춘 기독교
 

9 자본주의와 ‘종교-경제 이원사상’
“토니의 세기”가 함축하는 것
중세의 절망, 중세의 소망
계시의 옥좌에 이성이 앉고

10 신교사상의 그늘
루터, 칼뱅, 청교도
칼뱅주의에 담긴 불화의 씨―이원주의의 탄생
‘베버-토니 논제’ 소고
기독교, 자본주의, 토니

제6부 ‘동료애’ 사회를 향하여
 

11 자유의 원칙
자유와 권력
자유와 평등

12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
통치방법과 생활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
권력의 통제와 분산

13 ‘동등한 가치’와 동료애
시민권, 정치적 기획
동료애, 민주사회주의를 위한 통합적 철학

맺는 말
미주
참고문헌
토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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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고세훈
고려대학교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경제학과(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석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영국 노동당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주된 직분이라고 생각한다. 윤리적 의무의 관점에서 교수의 역할을 바라보는 드문 유형이다. 스스로 의식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학생들을 일컬을 때면 꼭 "우리 아이들"이라 말한다. 그 아이들이 지방 캠퍼스에 다닌다는 이유로 재능과 노력에 비해 차별받고 상처 입는 현실을 말할 때면, 평소 조용한 그의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곤 한다.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고, 인간의 심성과 공동체의 윤리적 기반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비판적이며, 사회주의의 가치와 이상이 현실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신적 원천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몇 가지 특별함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스스로 성찰적이지 못한 진보 지식인들의, 진보 이전의 '지식인 됨'에 대해 자주 의심한다. "한국처럼 지식에 대한 보상 체계가 각별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자칫 권력자,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 쉽기" 때문이란다. 인간과 사회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과장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인간의 한계와 사회적 불확실성을 전제한 위에서 진보의 기획과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인맥과 학력, 지식, 권세를 거래하고 과도한 음주 문화가 그 분위기를 만드는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우애와 협동의 지식인 문화가 성장하기를 기대하지만,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복지국가와 노동문제, 사회민주주의는 그의 글 곳곳에서 늘 마주치는 주제다. 그러나 그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추상적인 주제가 아니라, 그러한 주제를 구현하려 했던 "역사적 인물의 삶과 실천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과 평론을 좋아하며, 오웰의 말을 따라 "어떤 글도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간주한다.이따금 자신이 "케인스주의 정치학자"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그는 2009년, 케인스의 삶과 경제학 사상에 대해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가 쓴 대작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번역했다. 영국 노동당원이며 저명한 경제사학자이자 교육가였던 토니(Richard Henry Tawney)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왔는데, 궁극적으로 인물 중심의 영국 노동당사를 쓰고 싶다고 한다. 저서로 『영국 노동당사』(1999), 『복지국가의 이해』(2000), 『국가와 복지』(2003),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2007)를 펴냈고, 역서로는 『페이비언 사회주의』(200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