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2021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명·청 시대 호광 소수민족 지역의 토사와 국가 권력, 1368~1735

기본 정보

지은이
정철웅
옮긴이
출판사
아카넷
가격
35,000원
발행
2021년 5월 20일
판형
161*231*40mm
쪽수
628쪽
ISBN
9788957337301

도서 소개

또 다른 중국인 이야기:
명ㆍ청 시대 국가 권력과 호광 지역의 소수민족


요사이 우리 중국학계의 연구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언급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학문 분야나 연구 경향, 관심도 등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대체로 중국사 연구가 이전과 비교할 때 매우 해박하고 정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은 그리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분야는 여전히 존재하며, 중국의 소수민족에 관한 연구야말로 그러한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국내의 중국 소수민족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한족(漢族)의 그늘에 가려진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중국의 소수민족이 지닌 그 엄연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역사 무대에서 전혀 나름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매우 부정적인 양상으로만 묘사되어 왔다. 정말 소수민족의 존재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던 것일까? 일단 그들이 자신들만의 국가를 끝내 세우지 못했으며, 상당수가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러하다. 하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의 역사는 역동적이었다. 소수민족에 관한 연구가 지니는 의의가 바로 소수민족 자체가 지닌 이 역동적 역사 때문이다. 그들의 경제 제도, 가족 관계, 통치 형태, 생활과 풍속, 언어, 한족 상인이나 일반 한족들과의 접촉 과정과 그 구체적 양상, 사회 변화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양상들이 소수민족 자체의 역사 속에 들어 있다.

이 책에서는 호광(湖廣) 지역 소수민족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호광 지역 소수민족의 역사적 의의는 제법 분명하다고 진단하면서, 명(明) 왕조 성립부터 청 옹정(雍正) 연간(1723~1735)에 시행된 개토귀류(改土歸流) 직전 시기까지 호광 토사(土司)와 국가 사이에 전개된 다양한 역학 관계와 함께 토사가 지배한 명ㆍ청 시대 소수민족 사회가 다른 지역이나 한족 사회 못지않게 매우 다의적 성격을 지니고 작동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제1장에서는 그 기초 작업의 하나로 호광 지역의 물리적 자연 환경과 호광 토사의 구성을, 제2장에서는 소수민족 사회에 대한 명 왕조의 대표적인 통치 방법은 토사제도(土司制度)라는 일반론 대신에, 위소제도(衛所制度)와 이갑제(里甲制)의 운용과 실시 상황을 언급함으로써 호광 소수민족 지역에서 시행된 국가 권력의 다양성을 살폈다. 이어 제3장에서는 명대에 발생한 소수민족 반란을 단순히 소수민족과 국가 사이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소수민족 자체 내에서도 끊임없는 이합집산이 발생했던 양상과 반란의 이면에 등장한 소수민족 사회의 역동성을 묘사했다. 마지막 제4장에서는 호광 토사 중 가장 강력했다고 알려진 용미토사(容美土司)의 성장과 몰락을 통해 개토귀류 실시 이전 청초(淸初) 소수민족 정책의 특징을 조명했는데, 이는 명대 토사제도 운용과의 암묵적인 비교뿐 아니라 청대 개토귀류 시행의 전제 조건을 살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래 중국의 변방 지역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지만, 또 다른 성격을 지닌 내지(內地)의 변방 지역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매우 드문 상황이다. 따라서 소수민족 연구는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 중국 사학계의 연구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문제보다 좀 더 중요한 효과는 역사 시기 중국 제국이 전개한 팽창 정책의 의의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공이라는 외교정책, 무력 시위와 타협에 기반한 북방 민족과의 관계와는 또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공정과 같은 현재 중국의 정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서론
연구 의의
소수민족에 대한 시각
연구 내용
 
제1장 이질적인 세계: 明淸時代 湖廣 소수민족 지역의 자연 환경과 土司 구성
1. 湖廣 소수민족 지역의 자연 환경과 경제 활동

1) 호광토사 지역의 자연 지리
2) 기후와 풍토병
3) 호광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 활동

2. 明淸時代 湖廣 지역의 소수민족

1)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
2) 명청시대 호광 지역의 苗族
3) 명청시대 호광 지역의 土家族

3. 明代 湖廣土司의 구성

1) 土司와 土官
2) 토사의 통치 체제
3) 明代 施州衛 관할 토사
4) 明代 永順과 保靖 토사

제2장 明~淸初 湖廣土司 지역의 국가 권력: 衛所와 里甲制

1. 衛所와 土司

1) 明初 호광토사 지역의 위소 설치
洪武 초기의 위소 설치 배경
施州衛 설치 배경
大田軍民千戶所와 鎭溪軍民千戶所의 설치 배경
2) 호광 지역 위소의 築城과 屯田
築城과 위소의 구성
위소의 屯田
3) 위소 軍官
위소의 토착 軍官
위소의 隘官

2. 衛所와 소수민족 사회

1) 위소의 賦稅
慈利縣의 邊糧
위소와 隘糧
2) 위소와 토사 사이의 갈등
3) 위소의 병력과 軍餉

3. 明末淸初 湖廣 소수민족 지역과 里甲制

1) 명대 호광 지역의 이갑제 실시 상황
2) 명말청초 麻陽縣의 이갑제 상황
마양현의 編里와 稅役
마양현의 이갑제 운용과 朋充
마양현 均平里甲 논쟁의 결말
3) 이갑제와 명대 호광 소수민족 사회
부역의 징수
소수민족 지역의 행정 체제와 이갑제

제3장 다층 사회의 모순과 충돌: 明代 湖廣 지역의 소수민족 반란
1. 명대 토사 세력의 성장

1) 토사에 대한 통제력의 약화
2) 토사의 물질적 토대: 토사 지역의 木材
3) 소수민족 지역의 목재 생산과 明 왕조

2. 明 중엽 湖廣 지역 소수민족의 반란 양상

1) 明 왕조의 소수민족 대책과 반란 발생의 전제
2) 弘治~正德 연간(1488~1521) 호광 지역 소수민족의 반란
3) 嘉靖 연간 湘西 일대 隴母叟·隴求兒·隴許保의 반란
嘉靖 15~19년(1536~1540): 반란의 시작
嘉靖 21년(1542) 隴求兒의 반란
嘉靖 24년(1545) 隴許保의 반란

3. 湖廣 소수민족 지역의 반란과 明 왕조

1) 다층 사회의 형성
土官과 土兵
衛所 군인과 土官
苗人과 漢人
2) 明 왕조의 방어 대책과 소수민족 사회
巡檢司와 弓兵의 설치
營哨의 설치
蔡復一의 邊牆 築造
3) 군사 동원과 통제의 문제: 湖廣과 貴州
湖廣과 貴州의 행정 관할
三省 관할의 總督 설치와 兼制
군사적 협조 부재와 위무책의 등장
위무책에 대한 비판: 蕭端蒙과 張岳
4) 兵餉 공급의 문제
川·湖·貴 三省의 식량 수급 정황
湖廣省의 軍餉 부담과 수송 문제
嘉靖 연간 이후 식량 수급의 변화

제4장 明末淸初 湖廣 지역 소수민족 세력의 저항과 몰락
1. 明末~淸初 湖北 소수민족 지역의 토지 분쟁

1) 명말 容美土司의 세력 확장
2) 明代~淸初 容美土司 일대 토지 분쟁 양상
명대 連天關과 石柱關 일대 토지 분쟁
연천관·석주관 일대 토지 분쟁과 淸朝의 대응
巴東縣 知縣 齊祖望의 주장
3) 連天關 일대 토지 분쟁의 결말
鈕正己의 「退贖民屯案略」의 의미
「漢土疆界碑」에 등장하는 토지 분쟁 해결 양상

2. 淸 康熙 42년(1703) 湘西 지역의 紅苗 반란

1) 康熙 42년 이전 鎭筸 일대의 홍묘 반란
명대 홍묘 반란
강희 연간 초·중엽의 홍묘 반란
2) 康熙 42년 紅苗 반란의 양상과 진압
진압 작전
事後對策(1): 토벌과 위무
事後對策(2): 軍制 개편과 錢糧 징수
3) 鄂海의 『撫苗錄』에 등장하는 紅苗 대책
乾州 일대 군사 시설의 수리
紅苗의 歸誠

3. 改土歸流 前夜의 容美土司와 淸 王朝

1) 明末淸初 용미토사
明末 용미토사의 상황
容美宣慰使 田玄과 田霈霖
淸初 호광토사의 歸附 상황
2) 容美宣慰使 田舜年과 康熙帝
용미선위사 전순년
전순년 사건
3) 雍正 연간의 田旻如와 容美土司
최후의 容美宣慰使 田旻如
容美土司의 최후 저항
改土歸流를 향해
행정 분할의 구상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정철웅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1958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1990년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청대 양쯔 강 중류 지역의 농업 발달과 상업 활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유학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친절한 미셸 오Michel Hau 교수의 도움을 받아 사회경제사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 후 파리로 옮겨가 미셸 카르티에 Michel Cartier 교수와 피에르 에티엔 빌 Pierre-Etienne Will 교수의 수업에 참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후베이성과 산시성에 대해 연구하던 이 두 교수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서 후베이성, 후난성, 장시성을 대상으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1990년 말 귀국한 뒤에는 〈청말 양쯔 강 중류 지방의 상업 활동〉, 〈청대 양쯔 강 중류 지방의 인구 변화〉, 〈청대 양쯔 강 중류 지역의 상품 생산과 시장 구조〉,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명청 시기 양양부 경제 변화의 특성〉, 〈청대 농서를 통해 본 산시성의 농업 발달〉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후베이성과 산시성에 관한 글을 많이 쓰게 되었고, 이는 농업 발달이나 변화, 상업 활동과 시장, 인구 문제 등과 같은 사회경제사의 일차적인 연구 대상에서 차츰 후베이성 산악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청대 후베이성 서북부지역의 경제 개발과 환경〉이라는 논문은 이런 관심이 낳은 최초의 결과물이다. 이 글을 계기로 후베이성, 산시성, 쓰촨성이 만나는 전형적인 산악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삼성 교계 지역으로 관심을 확대했다. 명청 시대 산악 지역의 환경 문제와 민간 풍속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숭실대학교, 충남대학교, 한남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지금은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