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기본 정보
도서 소개
19세기 대표 지성 J. S. 밀과 토크빌의 눈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과 한계, 그리고 그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역작
1.민주주의를 어찌할꼬
한때 민주주의에 모든 희망을 건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속살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가 위협받고 있고, 만성적 체제 비효율이 민주주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치부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책은 ‘이게 민주주의냐!’는 한탄을 함께 고민하면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무능하고 우리 몸에 맞지 않다는 조롱과 맞서 싸우기 위해 ‘숙련 민주주의’를 제창한다.
둘째, 한국의 자칭 민주주의자들이 굳이 민주와 자유를 떼어놓으려는 저의와 그 무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민주주의가 또다시 ‘민주독재’라는 치명적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그 실체적 진실을 들추고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두 번째 목적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민주주의 사상의 최고봉 밀과 토크빌을 통해 재확인하고 발전시킨다. 즉 밀의 사상 속에서 민주주의의 체제 효율성, 토크빌의 이론 속에서 민주독재의 예방책을 찾는다. 이 바탕 위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미래지향적 대안을 찾는 것이 저자의 궁극 목적이다.
2. 밀과 토크빌의 해법
밀은 ‘자유주의의 양심’으로 불린다. 그는 『자유론』과 『대의정부론』 등을 썼고, 그 누구보다 먼저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분투했다. 토크빌은 그의 나이 서른에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썼다. 그 책 한 권으로 토크빌은 민주주의 이론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밀과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믿었으나 걱정도 많았다. 특히 민주주의가 ‘오만’에 빠져 자유를 억압할 위험을 무엇보다 경계했다. 밀은 토론이 힘을 발휘하는 대의민주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의 지적, 도덕적 수준이 일정 단계에 올라야 실현 가능한 꿈이다. 밀은 다수가 사악한 이익에 빠져 계급입법을 추구하면 대의민주주의의 두 가지 목표, 즉 인간 발전과 체제 효율성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토크빌은 민주사회 사람들이 오도된 평등 제일주의에 빠지면 다수의 압제를 자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독재의 출현 가능성을 무엇보다 염려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비관론에 매몰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새 길을 개척하기 위해 분투했다. 관건은 사람들의 의식이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토크빌은 참여의 확대에서 그 답을 찾았다. 참여를 통해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되고 공인의식도 키우게 된다고 생각했다. 참여가 민주독재의 등장을 차단해준다는 것이다. 밀도 공공 영역에서 참여를 늘려나가면 사람들이 지적, 도덕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 점에서 토크빌과 생각이 같았다. 다만 밀은 그런 참여가 일정한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적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더 큰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적 플라톤주의, 다른 말로 ‘숙련 민주주의’를 제창한다.
진실이 외면당하고 확증편향이 독버섯처럼 번져나가는 세기말적 현상 앞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밀과 토크빌은 제도 개혁과 참여 확대, 그리고 인본교육의 쇄신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을 권면한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여전히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열린 생각’의 소유자였다. 밀은 편견을 넘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토크빌은 당파(黨派)에 구애받지 않고 멀리 보기 위해 분투했다. 두 사상가는 분명 민주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친구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아프게 비판할 수 있었다. 세태는 가볍기 그지없고 그 틈을 이용해서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밀과 토크빌의 경구(警句)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할 때이다.
3.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성찰과 혜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밀과 토크빌은 현대 민주주의, 특히 한국 사회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1) 자유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
저자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겸손’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도 이상 오만해지면 파국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주권’은 성역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금도를 지켜야 한다. 국민의 뜻이라고 아무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힘을 믿고 ‘자신들 가운데 일부를 억누르고 싶은 욕망’을 품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곧 ‘인민의 지배’로 등식화하면서 인민이 원하면 언제든지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맹신한다. 그러나 제도적 제약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판이나 다름없다. 법을 능멸하는 ‘초법적’ 민주주의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아테네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아테네 시민들은 점차 ‘폭군’으로 변해 갔다. 하이에크가 말했듯이, 민주시민들이 제도적 올가미로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으면 ‘야만인’ 행세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정면충돌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법의 지배를 회복해야 민주주의의 폭주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로 민주주의를 적절하게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자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의 ‘반민주적’ 속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거부하면 전체주의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자유주의와의 결별을 촉구, 미화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자유주의를 적대시하다가는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 ‘촛불’의 진화
국민은 주권자이지만 무한 권능자는 아니다. 사려 깊은 절제가 전제되지 않으면 인민주권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 일상화된 집회와 시위는 참여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여줄 때가 많다.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 참여는 아름다울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관용과 상호이해와 존중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한국의 최근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법의 지배’를 위협하는 사태가 점증하는 것도 가볍게 볼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법이라는 인위적 올가미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고마워할지언정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3) 민주적 플라톤주의의 활용
민주주의는 당연히 인민의 참여를 요구하고 또 보장한다. 그러나 그 참여가 개인의 자기이익 보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치체제의 건강을 담보하기 어렵다. 공화주의는 자기이익 못지않게 다른 사람,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공익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참여의 확대와 공화주의적 배려를 역동적으로 혼융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플라톤주의, 즉 ‘숙련 민주주의’는 생각 이상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전문가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밀은 입법 단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최근 진영 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합리적 토론의 가능성이 사라진 한국 사회에서도 밀의 구상을 다각도로 실험해볼 만하다. 국가적 현안에 대해 중립적 입장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빌려보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요 정당들이 동의한다는 전제 아래, 일종의 ‘국민배심원’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문제의 성격에 따라 해당 분야 학자, 교수 등 전문가 가운데서 수십 명을 무작위 추출해서 배심원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이들 배심원이 양측의 발언을 경청한 뒤 나름대로 평결을 내리면, 사회적 정당성을 지닌 공론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론이 형성되면 사리에 맞지 않는, 또는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진영 논리는 세를 얻기 힘들 것이다. 터무니없는 궤변 또는 이해관계에 얽혀 진실을 호도하는 작태에 대해 여론의 준엄한 질타도 가능해질 것이다. 공론을 통해 시비를 가릴 수만 있다면, 진영 뒤에 숨어 기생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의 존립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4) 정치인 교육
정치인이 밉다고 정치인의 존재 자체를 손쉽게 (따라서 무책임하게) 부정하는 세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문제는 믿고 맡길 만한 정치인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괜찮은 정치인을 육성, 양성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정치인을 비롯하여 장차 사회를 이끌고 갈 지도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시키는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족쇄가 무섭기는 하지만, 선출직 공직 후보자들이 사전에 일정 기간 ‘정치 교육’을 이수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만 출마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출마 희망자들의 예비등록 시한을 대폭 앞당기고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루아침에 정계 진출을 결단하는 일은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은 150년 전에 이런 문제를 깊이 검토했다. 민주주의자라면 ‘숙련’의 당위성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5) 절제와 참여
밀은 자유에 대한 사랑과 자유를 절제하는 습속이 함께 어우러질 것을 강조한다. 특히 절제가 상호 관용과 타협의 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 바탕 위에서 두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정치 세력끼리 서로 생각을 맞추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적극적으로 타협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반대쪽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가능하면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무분별한 언행으로 관용과 타협의 정신을 퇴색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밀의 생각은 그렇다.
토크빌은 시민들이 결사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다수의 압제와 민주적 전제를 함께 퇴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사체 활동이 사람들 사이에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서로 협력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잘 이해된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습관도 갖게 된다. 토크빌은 이런 이유에서 국가로부터 일정 수준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가 주도의 신념체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민단체의 활성화가 민주적 전제에서 벗어나는 첩경이라고 믿었다. 진영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서론
1장 플라톤의 경고
2장 밀과 토크빌의 해법
3장 생애와 사상
4장 자유주의자의 우정
2부 토크빌: ‘민주독재’를 경계하라
1장 토크빌의 속마음
2장 ‘민주독재’에 대한 두려움
3장 ‘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자’
4장 질서와 도덕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5장 민주주의의 축소
6장 민주주의의 확대
7장 민주주의의 순치
8장 참여와 절제의 오묘한 균형
3부 밀: ‘숙련 민주주의’를 위한 제언
1장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선택
2장 급진주의 개혁운동의 이론과 실천
3장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포부
4장 ‘숙련 민주주의’를 위한 구상
5장 플라톤주의의 민주적 환생
6장 창조적 절충의 과제
4부 자유의 동반자: 밀과 토크빌 비교 분석
1장 민주주의의 친구
2장 밀이 토크빌보다 더 민주적?
3장 ‘고결한 자유’를 위한 행진?
4장 밀은 토크빌의 ‘학생’?
5장 ‘자유를 향해 두 손을 맞잡고’
5부 결론
1장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
2장 민주주의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