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도서
기본 정보
도서 소개
종교의 기원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흄의 논쟁적 저서 흄의 『종교의 자연사』(1757)는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1779)와 더불어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서구 최초의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종교가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그리고 종교인들은 무엇을 믿고 또 무엇을 행하는가, 마지막으로 그러한 종교적 신념과 실천이 인간의 다른 신념과 실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흄은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종교에 대한 어떠한 단정적인 결론도 유보한 채,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종교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리도록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이며 심리학적인 자료와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일단 종교의 타락과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18세기 당시는 물론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종교인이나 신학자, 특히 기독교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이들 종교인들의 반감을 사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종교를 개인의 신앙적인 입장을 떠나 냉정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탐구하는 것 자체가 불신자의 행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흄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나 일체의 신화적 요소를 부인하고 오직 도덕적인 실천을 유일한 종교적 실천으로 삼았던 18세기 영국이신론자들의 자연종교와, 계시와 신화적인 토대 위에서 인간본성에 반하는 온갖 광신적인 종교적 실천을 강요해 온 타락한 기성종교와의 두 극단 가운데서 종교를 인간의 자연적인 나약성에서 기인되는 삶의 양식으로서 수용하고 그 중용을 찾고자 했던 종교계몽론자였다.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흄을 포함한 계몽주의자들이 종교를 비판할 때 사용한 ‘종교’란 말은 개인의 인격적이고 내면적이며 그리고 초월적으로 정향된 어떤 신비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조, 교리, 그리고 의례의 체계를 가리키는 것이기에 그들은 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종교란 신비적이고 사밀(私密)한 것이기에 철학의 대상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철학이 만약 신비하고 사밀한 종교적 체험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종교와 무관한 것을 다루는 것이며, 만약 신비하고 사밀한 종교적 체험을 수용한다면 신학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종교철학의 무용성(無用性)을 지적하는 종교철학의 딜레마인데 흄의 『종교의 자연사』역시 이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흄은 이러한 비판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열매를 보아 그 믿음을 알찌니”(마태복음 7장 16절)라는 성서의 한 구절처럼 종교의 도덕적 열매를 종교의 중요한 속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신앙은 신비하고 사밀한 것이기에 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일축해 버린다. 흄에게서 철학이란 일상적인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이며, 종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이기에 종교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서의 종교철학은 다름 아닌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반성이 있기에 우리는 한낱 우상이나 미신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신앙의 맹목성과 무지로부터 벗어나 신앙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연사』는 종교학자나 종교철학자들이 보기에 분명 여러 문제점(자료적인 한계나 종교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편견 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개인의 신앙을 종교 담론으로 만들어 그것을 학문적으로 논의한 서구 최초의 종교철학적인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