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마치며

2022.06.13
정암학당 연구원
김유석

1.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책의 문제의식이 싹튼 시기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2002-3년 무렵이었다. 당시에 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적 대화’라고 불리는 플라톤의 초기 작품들에 나타난 극적인 요소, 특히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이 문답 과정에서 보인 감정적 반응들의 철학적 기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서 종종 필자의 눈에 밟혔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 상대자를 둘러싸고 있었던 청중의 존재였다. 플라톤은 어떤 때는 그들을 그저 익명의 청중들로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출신을 제법 자세히 거론하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혀 대화에 개입함으로써 논변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로 묘사하기도 한다. 

  나는 플라톤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상대자 이외에 굳이 청중을 비롯하여 제3의 인물들을 공들여 다룬 데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대화하던 모습을 가급적 충실히 재현하려 한 것일 수도 있고, 한때 비극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플라톤이 자신의 문재(文才)를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철학적인 교훈이나 경쟁 학파에 대한 비판이나 조롱을 숨겨놓았던 것일 수도 있다. 문헌적 근거가 없기에 이 모든 생각들은 말 그대로 짐작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플라톤의 대화뿐만 아니라, 동시대와 후대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그를 열광적으로 따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적이고 명민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못지않게 비판적이며 반골 기질이 강한 이들로서, 그들 중 다수는 스승의 사후에 스승의 뜻을 따라 철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그들이 소크라테스라는 한 명의 스승에게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철학자들로 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이었지만, 이들 이외에도 누군가는 스승의 검박한 삶과 덕의 실천을 철학의 모델로 삼았는가 하면(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와 견유들), 반대로 누군가는 스승의 삶에서 쾌락의 노예가 아닌 주인의 모습을 보았으며(아리스티포스와 퀴레네학파), 또 어떤 이들은 스승이 행했던 철학적 대화와 탐문의 방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메가라학파). 비록 플라톤과 크세노폰을 제외하고, 그들의 저술들은 모두 소실되어 단편들만이 남아있지만, 필자는 언젠가 그들이 펼쳤던 사유의 흔적을 추적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 책은 그 다짐의 첫 번째 결과이다.

2. 연구를 하면서 느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른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특히나 메가라학파를 연구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연구 자료의 불충분함과 불확실성이다. 메가라 철학자들의 저술은 모두 소실되었기에, 그들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동시대나 후대의 증언에 의지해야 한다. 불충분함은 오늘날 남아있는 증언들로는 메가라학파의 철학적 사유를 온전히 파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란 그나마 남은 증언들을 읽더라도 그 내용이 정말로 메가라 철학을 의미하는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연구 자료의 불충분함과 불확실성 때문에 메가라학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즉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당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집중하여 최대한 꼼꼼히 읽어나가며 숨은 논변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메가라학파를 다루기 위해서는 해당 단편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와 이전 시대의 저술들과 자료들을 곁에 놓고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의 단편집(G. Giannantoni, ed., Socratis et Socraticorum Reliquiae, Napoli, Bibliopolis 1990, 통칭 "SSR")


  메가라학파가 활동했던 서기전 4세기와 3세기는 그리스 지성사에서 이른바 고전기가 끝나고 헬레니즘으로 접어 들어가는 시기로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메가라학파 이외의 다양한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이 서로 공존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철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 대결하고 논쟁을 벌였으며, 그 속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상대방의 관점과 개념들을 서슴없이 가져다 사용하곤 하였다. 따라서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는 메가라학파의 철학은 동시대의 철학자들에 대한 비교 검토를 통해 그 빈 부분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 단편 부분

3. 소크라테스주의 전통에 관한 한결 더 포괄적인 연구를 기대하며...

  사실 이러한 연구 조건은 비단 메가라학파뿐만 아니라, 견유학파나 퀴레네학파를 비롯하여 당시에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데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들에 관한 연구 자료들 역시 메가라학파 못지 않게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반면, 이들이 서로 간의 대결과 참조를 통해 주고받은 영향과 이론적 의존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사료의 빈 부분들에 대한 개연적인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았을 때, 메가라학파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다른 학파들과 철학자들 전반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관심을 촉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였던 뤽 브리송(Luc Brisson) 선생은 소크라테스주의자들 가운데 하나인 견유학파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곤 했다. 견유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일화들은 대부분 논리적인 정합성도, 역사적 개연성도 결여되어 있으며, 그 내용 역시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있어서, 그 하나하나의 증언들로부터는 별다른 철학적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무가치한 증언들을 낱개로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두 모아놓고 보면, 그 안에는 일정한 사유의 흐름 내지는 경향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개의 철학자나 학파의 사상인지 그 이론적 정체성이나 사유의 경계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그런 경향이나 흐름이 동시대의 다양한 철학자들 및 학파들과 공존하고 대결하는 속에서 형성된 고민과 사유의 흔적이라고 추측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요컨대 철학의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특히나 소크라테스주의 전통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학파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한결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비교 연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몇몇 개별 학파나 철학자들의 흔적을 쫓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철학자들이 공유했던 문제의식과 철학적 담론들을 보다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이 연구는 서양 철학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메가라학파의 경우 개별적인 논문의 수도 적지만, 메가라학파의 사유를 통일적으로 다룬 연구서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영어권의 경우 연구서와 번역서가 전무하며, 대표적인 것들은 독일어권의 편집본과 주석, 프랑스어권의 번역과 해설서, 그리고 이탈리아어권의 번역과 해설이다. 오늘날 메가라학파에 관한 현대어 번역으로는 이탈리아어(1984), 프랑스어(1985), 그리고 한국어(2022)가 유일하다.

 

저자 소개

김유석
정암학당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파리1팡테옹소르본대학교에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